♠시와 글 모음♠/♧ 시 모음

이상국 시인

modory 2016. 5. 30. 06:48


유월이상국(1946~ )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종일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 양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

 

문태준 시인-

남쪽 들녘에서는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일이 한창이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했으니 이즈음 농가에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

곧 유월이다. 시인은 유월을 산야에 숨어 사는 사람에 빗댄다. 숨어 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쓱 지나간다고 말한다. 유월은 포근하게 감싸 안기듯 오목한 새의 둥지 같고, 또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조용하다. 흰 구름은 하늘로 둥둥 떠가고 계곡의 물소리와 초여름 산의 푸른 산그늘은 마을로 내려온다. 다가오는 유월에는 '풀과 벌레들의 이름을 불러주', '환한 물소리에 몸을 씻'고 싶다.

살구와 자두의 알이 굵어지고, 채반에 들밥을 이고 가는 이의 마음이 바빠 걸음도 빨라지는 달이 유월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시인 이상국

1946927, 강원 양양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76년 시 '겨울추상화'수상 2014 19회 현대불교문학상. 주요 경력 : 유심지 주간

 

여름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이다

 

하루살이들 이악스럽게 달려드는 멍석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이 가끔 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며

어머니는 감자를 깎으시고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른데

어디 보자며

불쑥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감자톨 같은 내 불알을 만져보시던

 

아버지야 아버지야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감자를 묻고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에서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겨울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구어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감자떡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