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상국(1946~ )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종일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 양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
문태준 시인- 남쪽 들녘에서는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일이 한창이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했으니 이즈음 농가에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 ◈시인 이상국 1946년 9월 27일, 강원 양양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76년 시 '겨울추상화'수상 2014 제19회 현대불교문학상. 주요 경력 : 유심지 주간
◈여름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이다
하루살이들 이악스럽게 달려드는 멍석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이 가끔 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며 어머니는 감자를 깎으시고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른데 어디 보자며 불쑥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감자톨 같은 내 불알을 만져보시던
아버지야 아버지야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감자를 묻고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에서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겨울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구어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감자떡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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