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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가 뭐길래 조선일보에서 가져 옴 2016-04-05

modory 2016. 4. 5. 05:27


조선일보 2016-04-05

[김윤덕의 줌마병법]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보랴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김 아무개올시다. 나이 오십에 체통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귀하가 쓴 '송중기가 뭐길래'란 칼럼이 아침부터 제 속을 뒤집어 몇 글자 적습니다.

 

대체 송중기가 뭐길래 언론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들이 떼 지어 호들갑을 떱니까. 밥집 아줌마부터 대통령까지 앞다퉈 송중기를 입에 올리니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부하 직원이 일러준 '태후 남편의 행동수칙'엔 입을 딱 벌렸습니다. '태양의 후예' 방송하는 날엔 반드시 저녁밥을 먹고 귀가하랍니다. TV 보는 아내에겐 말도 걸지 말고 눈에 띄지도 말랍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 숨이 꼴딱 넘어가도록 일하고 돌아온 가장에게 이런 푸대접, 온당한 겁니까?

 

귀하는 아내에게 건네는 손길, 말 한마디에 온기를 실으라 쓰셨지요. 송중기처럼 아내의 눈 마주 보며 이야길 들어주라고도 했습디다. 왜 그 반대는 안 합니까? 파김치돼 돌아온 남편에게 "여보, 힘들었지?" 한마디 건네주면 여성 인권이 땅에 떨어진답니까. 남녀관계의 성패를 가르는 건 남자의 행동이고, 여자가 원하는 걸 아는 남자가 진짜 영웅이라고 썼던가요? 하늘 아래 어떤 관계가 한쪽의 정성과 노력만으로 결실을 맺는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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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밴댕이 소갈머리로 여기진 마십시오. 여자들 죽어가던 연애 세포 되살려냈다는 그 드라마, 이해해보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TV 앞에 얼 빼고 앉은 마누라 옆에서 본방 사수라는 것도 해봤지요. 한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됩니다. 따져볼까요? 제아무리 707특수임무대대라도 일개 특전사 대위를 데려가기 위해 서울 시내에 헬기가 뜨는 일은 없습니다. 특전사가 급히 복귀해야 할 때 그들을 태우러 오는 건 헬기가 아니라 택시입니다. 서대영 상사를 사선(死線)에 세워놓고 사격 훈련하는 장면도 어리둥절합니다. 특전사가 무슨 아이언맨입니까? 유시진 대위가 연인의 얼굴에 총을 겨눈 뒤 레이저 불빛으로 하트를 그리는 장면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총은 살상무기입니다. ()이 아닌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어선 안 되는 까닭은 '모든 총은 장전돼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총기 상식을 뒤엎는 행위가 지상파 드라마에 버젓이 나오다니요. 중대장이란 사내의 피부는 또 왜 그리 뽀얍니까? 얼마나 좋은 자외선 차단제가 군에 보급되길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전에서 뒹구는 군인의 피부가 그리도 뽀송뽀송합니까. 송혜교 휴대폰은 바닷물에 침수되고도 음성녹음 기능만은 그대로 살아 있으니 이 또한 마법 아닌지요. 그래서 이 드라마가 군대도 안 간 여성 작가와 아줌마 부대가 합종연횡해 만든 너절한 판타지라는 소릴 듣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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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를 두고 '진짜 남자가 돌아왔다'고도 극찬하셨나요? 현실 속 남편들은 신발만 벗으면 누울 자리부터 찾는 골골한 인간인데, 송중기는 여자가 벼랑 끝에 매달리면 수퍼맨처럼 날아와 구해준다면서요.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하며 큐피드의 눈화살을 다발로 쏟아부으니 여자들이 환장을 한다면서요.

 

이 땅의 사내들 볼품없는 거, 맞습니다. 전년 대비 실적 떨어졌다고 눈앞에서 결재서류가 패대기쳐져도 90도로 인사하고 나오는 게 사내들입니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대학 갈 딸애 얼굴이 어른거려 닭똥집에 소주 한 잔으로 울분을 삼키는 게 사내들입니다. 눈만 마주치면 돈타령, 집타령, 애들 학원 타령하는 마누라한테 "그래~?" 하며 맞장구쳐줄 남자 몇이나 될까요?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습니까? 무쇠도 녹일 만큼 뜨거웠던 20대엔 저 또한 쫄지 않았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이 없어 일당으로 공사판 뛸 때도, 공무원 시험 연거푸 낙방해 눈앞이 캄캄할 때도 두 팔과 다리만 있으면 문제없다는 패기로 똘똘 뭉쳤던 사내입니다. 그러나 비정한 현실 앞엔 장사가 없더군요. 타협은 인생의 빛나는 지혜요, 비굴은 생존을 위한 야멸찬 노하우였지요. 옛 아버지들처럼 밥상을 뒤엎을 용기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리는 말이 어찌 마구간을 돌아보랴" 호통했지만, 마구간에서라도 구박받지 않고 비를 피하려면 그저 침묵이 최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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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우리 제수씨, 참 멋진 여잡니다. TV 앞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지만, 어린 남자애한테 미혹되기 싫어 태후 따위 안 본다더군요. 얼마나 기개가 넘칩니까. 남자들이 할 말 없어 잠자코 있는 게 아닙니다. 가정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입 다물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소서. 의리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선거판 저분들보다야 백배 낫지 않습니까. 송중기요? 석 달만 살아보십시오. 도긴개긴입니다. 죄 없는 남자들 몰아붙이지 마시고, 정론직필에만 힘쓰소서. 시간 나면 그 댁 남편 어깨 한번 다독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