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칼럼 /2016.05.05
우리는 이 여자를 ㅇㅇ할멈이라 부르는데 전라도 정치인들은 조선 왕조시대 국모나 되는 것처럼 섬기며 알현하러 다닌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에서 이런 칼럼이 나올까?
[양상훈 칼럼] '이희호 마케팅'도 이제 좀 그만 하길
'이 여사가 대선 출마하랬다' '어머니가 모른다고 했다' 이 여사 둘러싼 꼴불견 논란… 부인·자식도 무슨 권력인가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도 초등생처럼 매달려 알현하니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유했다는 논란을 보면서 그것의 사실 여부도 문제지만 이 여사를 놓고 벌이는 야권 인사들의 알현·아첨 행태 역시 혐오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야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 사후(死後)에 이제는 그 부인에게서라도 무슨 도장을 받겠다고 때만 되면 몰려가 벌이는 아부는 이제는 거의 희극적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도를 넘었다. 정치적 이용과 구걸이 뒤섞여 민망할 지경이다. 야권이 분당된 뒤인 올해 1월 더민주 문재인 대표 일행 10여명이 이 여사를 찾아가 단체로 방바닥에 앉은 채로 의자에 앉은 이 여사를 올려다보면서 "잘해보라"는 말 한마디라도 끌어내 보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영락없이 선생님 발밑에 꿇어앉은 초등학생들이었다. 며칠 뒤에 뒤질세라 이 여사를 찾은 안철수 대표는 이 여사의 덕담을 과장해 발표했다가 문제가 되자 녹취록까지 공개했다. 전 대통령 부인과의 대화가 뭐라고 주요 정치인이 몰래 녹음까지 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이 여사께 큰 결례를 범했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조아릴 정도는 아니었다. 녹음한 비서는 파면됐다. 이 여사가 누구는 20분 만나고, 누구는 10분 만났다는 걸로 경쟁도 벌인다. 이 여사는 올해로 94세다. 최근까지 낙상(落傷)으로 입원해 있었다. 젊은 시절 여성운동을 한 재야인사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평생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독자적으로 구축한 정치적 영역이 있을 리 없다. 지금 고령의 이 여사에게 '힘'이 있다면 '김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누구를 좋아했을까'를 '감별'하고 '성수'(聖水)를 뿌려줄지를 결정하는 권한일 것이다. 총선 사흘 전인 지난 4월 10일 권노갑씨가 "이희호 여사를 만나 안철수당 입당 허락을 받았다"고, 이 여사가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밝히기도 했지만 실제 이 여사가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나 행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여사가 날아오는 부나방들에게 손을 내저었다면 이런 꼴불견들이 아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월엔 김 전 대통령 3남인 김홍걸씨가 더민주에 입당해 박지원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박 원내대표는 방송에 나와 "이희호 여사가 (홍걸씨의 더민주 입당은) 김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꼴이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후 박 원내대표와 홍걸씨는 원수지간처럼 됐다. 이번에 박 원내대표가 '이 여사가 내게 대통령 출마를 권유했다'고 하자 홍걸씨가 즉각 나서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전혀 모르시더라"고 반박했다. 박 원내대표도 가만있지 않고 "이 여사가 써 준 편지가 있다"고 재반박했다. 누구 말이 맞든 고령의 전 대통령 부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들 수나 있는 것처럼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어이가 없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거의 동시에 비리 논란에 휘말린 세 아들을 세간에선 '홍(弘)삼(三) 트리오'라고 불렀다. 이들은 절제라는 것을 모른다. 트리오 중 첫 아들은 당시 이미 국회의원이었고 거액의 뇌물수수로 감옥까지 갔다 온 둘째도 의원으로 당선됐다. 모두 아버지 고향이거나 부근에서 출마한 것이었다. 그러더니 역시 비리로 유죄를 받은 셋째까지 나서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느니, 안 했느니 따지는 걸 보면 이들은 누구의 부인, 누구의 자식이란 걸 당연한 권력으로 아는 모양이다. 야권 정치인들이 이 여사를 알현하는 것은 물론 호남 표 때문이다. 이 여사에게서 한마디 덕담이라도 듣거나 그 아들을 같은 편으로 데리고 있으면 호남 민심을 잡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때 3김씨 모두가 몰표를 얻는 지역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두 김씨의 경우엔 본인이 사망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집단성, 연결성도 자연스레 희석됐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 주변만 끈질기게 그 줄을 붙잡고 매달려 있다. 유달리 존경심이 깊은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부인과 아들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겠다고 경쟁하는 것은 본인들의 밑천 없음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까지 부끄럽게 한다. 이 꼴불견은 이 여사가 원해서 만든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여사가 찾아오는 정치인들 면전에 대고 "나한테 올 시간에 국회에서 법안 심의나 제대로 하라"고 일갈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볼썽사나운 '이희호 마케팅'을 유권자들이 강제로 끝내지 않고 스스로 없앤다면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 본인, 그리고 다른 가족 모두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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