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하늘 살점 묻어나는
비들재(嶺)에 오르면
지금도
우리 엄니(母)의 눈물이 있습니다.
피붙이의 따스함을 등에 업고
달빛도 비껴가는 시리디 시린
시오릿 새벽 눈길.
이별을 改札하던 산골 驛舍에서
뒷모습만 보였던 그 때의 연유를
한참 세월이 흐른 이제사 알았습니다.
현해탄 건넌 지아비의 戀書를
한 줄 빠짐없이 줄줄이 외던
그 참혹한 忘却.
달구지에 허기진 세월을 싣고
넘나들던 잿마루에
피다만 꽃띠 소녀는
한줌 바람되어 날렸습니다.
산비들기의 밤 울음을 베고 누운
비들재에 오면
내가 부를
단 하나의 이름
엄니,
우리 엄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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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던 논픽션이던 글은 쓴 이를 떠나면 곧 讀者의 것이지요.
따라서 心象에 대한 自意的 解釋을 하는 것도 곧 讀者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엄니(母)'는 그時代 우리 모두의 엄니라는생각을
하게 됩니다. 恨과 눈물은 그시대의 女人이 갖는 共有語 !
다만 비들재(嶺)를 통한 '그 時代의 女人'인 우리 엄니의 恨을
형상화하는 어설픈 徒勞를 하면서도 눈물을 씹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한세기 전,
그시대 東京 대학 유학생인 지아비를
바라만 보며 평생을 그리움만 가슴에 담고
호롱불에 묵묵 세월을 태우며 보낸 우리 엄니,
비들재(嶺)는 우리 엄니가 잠든 곳입니다. 그 곳은 어릴 때
우리 果樹園이 있던 곳입니다. 방학이면 달려가 뒹굴었던
추억어린 내 꿈의 故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