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세상 2018년 3월 5일 월요일
◈ [사설] 한반도 명운 가를 對北 특사 방북 국민이 주시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5명으로 구성된 대북 특사단을 1박 2일 일정으로 북한에 파견한다. 정 실장은 정부의 대미 외교 총괄자이고, 서 원장은 1·2차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관여한 사람이다. 문 대통령 친서를 들고 갈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대통령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문 대통령이 세 사람을 한꺼번에 보내는 것은 김정은에게 현 사태의 엄중함을 강조하고 비핵화 결단을 촉구하려는 뜻일 것이다. 김정은이 만약 '비핵화하겠다'는 분명한 뜻을 밝히면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트럼프·김정은 회담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북 외무성은 대북 특사단 발표 전날인 3일 "미국과 전제조건적인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전제 대화는 안 할 것이란 의미다. 그러면서 핵보유국 지위로 미국과 군축 회담을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은 궁지에 몰려 있다. 대북 제재가 과거와는 다르다. 북은 미국의 대북 군사 조치 가능성에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계속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어떻게든 남북 대화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다. 대북 특사단에게 비핵화라는 문제의 본질은 비켜가면서 한·미 훈련과 북핵·미사일 실험 동시 중단, 이산가족 상봉 등을 내걸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르자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어떤 현란한 제안도 '비핵화'가 아니면 기만일 뿐이다. 이하 생략 전문 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4/2018030401833.html
정신나간 짓이다. 분단 80년동안 북한을 경험하고도 특사를 보내다니 문재인정권은 건망증정권인가? 치매 정권인가?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바른 판단이다
◈ [최보식이 만난 사람 / 시인 김지하 단독인터뷰] "내가 못났다는 거요… 난 씩씩한 사람이 못 돼, 겁이 굉장히 많고" "영원한 진리 아닌 마르크시즘
진보 혁신 떠드는 놈들이 100년 전 하던 얘기를 똑같이, 좀팽이 깡통 좌파로구나"
"감옥에서 박정희 죽음 소식 교도관이 전해주는 순간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시오'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시인 김지하와 통화를 한 것은 대규모 3·1절 집회를 열겠다는 보수 진영의 신문 광고 때문이었다. 주최 측 대표 명단에 '김지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내 목을 걸고 감옥에 간 게 '민주' 앞에 놓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잖소. 개헌을 한다면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뺀다는 것에 좋지 않게 생각해. 그래서 내 이름을 넣어도 좋다고 한 것인데, 내가 보수의 리더인 것처럼 광고가 실렸다고 했소? 내 나이 칠십팔이오, 몸도 아픈 내가 지금 정치하게 됐소? 글도 시(詩)도 안 쓰고, 그림이나 그리며 원보 엄마(부인 김영주)만 모시고 사는데…."
술 한 병 들고 강원도 원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술·담배 안 한 지 오래됐소. 당신도 꽤 늙었구먼. 우리가 얼굴 안 본 지 10년 됐나, 20년 됐나. 김대중 시절 당신 인터뷰로 그쪽 사람들에게 많이 시달렸지…."
김지하는“사람 잡아 조지는 게 정치요? 할 말은 많아도 이젠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런 난국에 김 선생께서 나와주셨으면 하더군요.
"내가 어떻게 우파의 리더가 될 수 있겠소.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오. 중간파도 아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걸 내 사명으로 하는 사람이오."
―새로운 길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하고 얘기하는 게 힘이 들지만, 우리 전통 속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찾는 것이나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여성성(女性性)에 주목하는 것인데…."
―지금 현실의 긴박성과는 떨어진, 너무 추상적인 답변이군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신문기자처럼 말해야 하나, 정치가처럼 말해야 하나. 안 그렇지 않소? 그런 얘기 할 수 있으면 내가 왔다 갔다 하며 돈을 벌지. 나는 아름다울 미(美), 배울 학(學), 미학 전공이오. 예술의 원리와 효과에 관심 있고, 연극 연출, 그림, 시를 해왔잖아. 그렇게 해온 사람의 말이란 애매하고 어정쩡할 수밖에 없는 거지."
―제가 이해 못하면 독자도 이해를 못합니다. 현 정권이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다고 봅니까?
"이해를 안 하려고 하는 것이지. 현 정권이 모두 맞는다고 생각하면 당신을 이렇게 만나 떠들겠어. 간혹 어떨 때는 이 자식들 봐라, 마르크시즘은 영원한 진리도 아닌데, 그 자체가 변화·발전·진보하는 것인데, 100년 전에 하던 얘기를 똑같이 하나, 진보 혁신을 떠드는 놈들이 그걸 집착해, 좀팽이 깡통 좌파로구나 여기지. 그놈의 똘마니들이니까."
―'그놈'이 누구입니까?
"신문 기사를 보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감동받았다고 했더군. 내 인생의 책이라고 그랬나. 백낙청은 자칭 한국 문화계의 '원로'로 행세하고 있고…."
―리영희나 백낙청은 어려운 시절 함께했던 동지(同志) 아니었나요? 관계가 왜 이렇게 비틀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지주(地主) 집안에 그 시절 하버드대 대학원을 나온 백낙청이 민중을 운운하는 이중성 때문인가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한 그가 어떻게 한국 문학사의 심판관을 해. 내가 장모(박경리)를 알기도 전에, 그는 박경리 소설 '시장과 전장'을 형편없이 깠어. 그런 심미관(審美觀)을 보고 그를 더 우습게 봤어. 리영희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월남전 타령이고, 외신(外信)에 나오는 걸로 자기 사상인 양 떠들었어. 1973년인가 신경림 시집 '농무(農舞)' 출판기념회에서 비위가 틀려 이들과 대판 싸웠어요. 그 뒤 한 선배가 '함께 안 가면 이 동네에서 당신이 외톨이 된다'고 말려 억지로 친해졌던 거지."
―5년 반 전쯤 본지(本紙) 기고문을 통해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깡통 좌파'라고 공격해 화제가 됐지요.
"내가 감옥 독방에 갇혀 있었을 때 교도관을 통해 바깥과 연락했어요. 한번은 리영희·백낙청·고은이 함께하는 술자리에 교도관이 앉아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고은이 '박경리에게 손자를 업고 시청 앞에서 김지하 석방 플래카드 들고 시위하라고 했더니 과부년 주제에 말을 안 들어. 하라고 하면 할 것이지'라고 떠벌리자, 리영희·백낙청이 낄낄 웃더라는 거야. 그 얘기를 교도관에게 전달받았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 때 '역사와의 화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김지하가 이렇게 변절할 수가 있나'라는 당혹감도 있었습니다.
"여성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소. 인류 역사의 변화가 감지됐어요. 동학에 의하면 후천(後天) 시대가 도래하고, 김일부(金一夫)의 '정역(正易)'에는 우주가 여성성으로 바뀌며 그늘이 빛을 감싸게 되며, 천부경(天符經)에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오고…."
그의 설명이 십여 분 넘게 이어져, 중간에 말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 '부모님이 흉탄에 돌아가셨고 18년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내공이 있을 거다'라고 했지요?
"제 아비로부터 정치를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친하게 지낸 선후배들이 찾아와 좋게 얘기를 하며 '박근혜를 한번 만나라'고 했어요. 내게 찾아오겠다는 전갈이 왔을 때, '지학순(池學淳) 주교의 무덤에 가서 정권 잡으면 유신 체제처럼 안 하겠다고 큰소리로 다짐하고 오라'고 하니까, 실제 그렇게 하고 찾아왔어요."
―그 전부터 알아온 게 아니라 그때 처음 봤다는 것이군요.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그의 아버지 얘기를 꺼냈어요. 감옥 독방에서 내가 미친 증세가 와서 100일간 참선을 했어요. 참선이 끝나는 바로 그날 박정희가 죽었어요. 교도관이 전해주는 순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소.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시오'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나처럼 박정희 미워한 사람 별로 없었을 텐데. 다음 날 교도소 TV를 통해 미사를 집전하는 김수환 추기경을 봤어요. 그분이 한참 침묵한 뒤 '인생무상'이라며 나와 똑같은 말을 하더군. 그때부터 내가 웃기 시작했어요.“
―이런 얘기를 들려주니까 박 후보는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웃지도 울지도 않고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부모가 총 맞아 죽고 난 뒤 18년을 고독 속에서 지내면서 생긴 내공이 아닌가 싶더만. 그래서 내가 '당신을 잘 모르지만, 이런 고통을 에너지화해서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중요한 것은 문화인데 모든 것을 문화와 연결시켜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소."
―그렇게 평가했던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는데.
"제 아버지에게 정치를 배웠으면 치밀한 정치 패거리가 있겠지, 그 패거리가 돕지 않겠는가 했는데. 그게 안 보였어. 임금처럼 만기친람이었어. 어디서 최순실이 같은 여자가 튀어나와 야단법석이 될 줄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어."
―구속 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떤 감상이 있습니까?
"이명박도 구속시키려고 하지 않소. '적폐 청산'이 말은 그럴 듯하나, 정치가 사람 잡아 조지는 것인가. 그게 정치요? 할 말은 많아도 나는 이제 하지 않아."
―김 선생을 보면, 짧았던 젊은 날의 어떤 신념과 선택이 그 뒤의 길고 긴 세월을 모두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날 나는 정치(시국투쟁)를 할 생각이 없었소. 옆에서는 자꾸 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조직에는 안 들어갔지. 나는 시·연극·드라마 같은 문화에 관심이 있었소. 대학 시절 은사는 내게 '노자(老子)를 읽어라. 허무에서 배워라'고 했고, 또 '서양 미학을 배우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말고 거리의 미학자가 되라'고 했소. 그런 괴상한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나는 시 쓰고 거리의 미학자가 된 거 아니오." 이하 생략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4/2018030401888.html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잡고 굳건하게 만들려면 문화를 바로 세워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영희. 백낙청, 고은. 조정래의 족적을 지워야한다.
◈ 태평로] '괴물 세상'에서 본 3월의 어떤 입학식
入學式 도중 토한 14세 소년… 백발 교사, 밀대 들고 달려와
뉴스만 보면 세상은 지옥… 괴물 탄생 막는 어른 돼야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열네 살 남자아이들이 오열 종대로 앉아 있다.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덩치가 어른만 한 거뭇한 아이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아이의 입학식 풍경이다. 장소는 학교 체육관. 2층 관람석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걱정도 되었다. 키 작고 힘없는 내 아이가 큰 애들한테 치이지나 않을지. 그때였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양동이와 밀대를 들고 백발(白髮)의 선생님이 뛰어온다. 의자 하나가 비어 있고 그 곁에 붉고 큼지막한 토사물이 보였다. 옆자리 부모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걱정과 탄식. "저를 어째, 어쩌면 좋아." "세상에, 얼마나 긴장했으면…." 이하생략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4/20180304018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