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미주알고주알

박정희는 재평가하고 모두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한다.

modory 2006. 8. 31. 11:11
“朴대통령, 反민주 욕먹으며 중산층 키워”
‘박정희를 말하다’ 펴낸 김성진 前문화공보부 장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중산층 무너뜨린 현 정권… 감정 털고 이성적 평가를”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감정을 털어버리고 이성적으로 평가할 때가 됐습니다. 10년 동안 박 대통령을 측근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김성진(金聖鎭·75)씨가 자신이 목격한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기록한 ‘박정희를 말하다’(삶과꿈)를 펴냈다. 김씨는 동양통신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던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고, 동양통신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이던 1970년 12월 청와대 공보비서로 임명됐다. 그는 이듬해 청와대 대변인이 되어 1975년 12월까지 근무했고, 이어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1979년 12월까지 재직했다. 1979년 10·26사건 다음날 중앙청기자실에서 박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처음 발표한 사람도 김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마디로 현대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도자였습니다. 관념과 이념의 세계보다는 생활과 현실을 중시했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을 먼저 해야 한다고 봤지요.”

김씨는 1960년대의 한국 사회가 지식층과 대중이 크게 괴리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중산층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자신이 길러낸 중산층의 반발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反) 민주적이라고 비판 받으면서 중산층을 강화한 박정희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중산층을 무너뜨린 노무현 중 어느 쪽이 진정 민주주의에 이바지했는지 묻고 싶다”고 김씨는 말했다.

이 책에서는 당시 정치인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혐오감을 확인할 수 있다. ‘국회는 국민의 여론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여야 간에 신뢰도 없으며, 야당은 무책임한 비판만 하고 있어서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박 대통령은 보았다는 것이다.

‘그의 개혁 정치, 그리고 과잉충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김성진씨는 박정희 정권의 권력기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과 가족에게 책임감과 죄송한 마음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그 대부분이 박 대통령 본인보다는 이후락·박종규·차지철·김재규 등 2인자 자리를 노리던 군인 출신 권력자들의 과잉충성에서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남북대화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던 이후락, 월권 행위와 무모한 강경책을 밀어붙이던 차지철을 비판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과잉충성’을 막지 못한 책임은 결국 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김씨는 이에 대해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박 대통령은 패기와 결단력이 많이 약해졌다”며 “‘지도자로서의 사명감’과 ‘개인·가족의 삶’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그 틈을 개인적 야심을 가진 측근들이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성진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1983년 하야(下野)’ 결심을 하고 있었다고 이 책에서 주장했다.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고, 중화학공업 건설이 본 궤도에 오르면 임기만료 한 해 전에 국무총리에게 정권을 물려주려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70년대 후반 어느 날, 박 대통령이 갑자기 ‘앞으로 내가 초야로 돌아가 자서전을 쓰게 될 경우 임자가 와서 도와주겠나?’라고 물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