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 역주행 5년] 코드에 끌려다닌 부동산 대책
'판교 분양 연기' 등 주요 정책 盧대통령이 결정
◆2003년 10월 29일 청와대.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10·29대책 발표에 앞선 범정부 차원의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재경부 관료 A씨는 회의자료에 포함된 '주택거래허가제'라는 표현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정부가 드디어 시장경제를 포기하는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자칫 반대의견을 냈다가 '투기를 옹호하는 관료'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택거래신고제를 먼저 도입하고 그래도 집값이 오르면 허가제를 도입한다는 2단계 방안이 확정됐다. 이날 청와대 회의 결과는 오후 1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를 통해 발표됐다. 주택거래신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10·29대책이다. 신고제는 이 회의에서 즉석 제안되고 채택된 정책이다 보니 당시 건교부와 재경부 실무자들도 내용을 몰라 우왕좌왕하기까지 했다.
- ▲ 노무현 정부는 시장보다는 자신들의 코드에 맞춘 각종 대책을 남발했지만 집값이 계속 오르자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을 대폭 올렸다. 무차별적 세금 인상으로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가구 1주택자, 은퇴가구의 세금 부담도 급증하는 부작용이 빚어졌다. /조선일보 DB
◆대통령이 직접 판교 분양 연기 결정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를 도입한 2005년 8·31대책이 나오기 두 달여 전인 6월 17일. 건교부는 판교신도시 분양을 사흘 앞두고 분양 일정을 전면 중단한다는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로또'로까지 통하던 판교신도시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판교 인근 용인·분당 등의 집값이 치솟던 상황이었다.
분양 일정 전면 중단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주택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판교신도시 분양을 전면 재검토해 보세요."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이 판교신도시 분양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예정대로 분양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던 건교부·재경부 관료들은 당혹스러웠지만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건교부 관계자는 "판교신도시 분양 연기가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판단을 했지만 대통령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판교신도시 분양 연기 결정에 이은 8·31대책 등으로 집값은 일시적 안정 상태로 들어갔다. 그러나 판교 분양을 언제까지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006년 판교 아파트가 분양되면서 그동안 인위적으로 잡아두고 있던 수도권 집값이 일시에 폭등 상황으로 들어갔다. 도화선이 됐던 셈이다.
노 대통령은 주택정책의 '원맨 밴드'였다. 집값을 잡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나온 측면도 있었으나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정책이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은 그만큼 왜곡됐다.
노 대통령은 분양 원가 공개에 원래 반대 입장이었다. 이른바 '장사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원가를 다 공개하고 누가 사업을 하려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측에서 압박이 셌지만 노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006년 9월 28일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시민사회에서 그(원가 공개)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저도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고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의 입장이 바뀌자 재경부·건교부 장관도 한순간에 말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그들은 원가 공개야말로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혀 오고 있었다. 당시 원가 공개 반대 입장이었던 건교부 고위 관료는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전문가와 관료들이 결정했다기보다는 청와대와 시민단체가 주도했다"면서 "자기네들이 다 결정해놓고 책임은 관료들이 져야 했다"고 말했다.
◆'강남 집값'에 너무 집착
"주택공사 사장님, 내가 화끈하게 밀어 드리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습니까."
2006년 4월 25일 주거복지정책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노 대통령은 10년간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 공급을 공약했으나 2004년에 8만 가구 목표에 2만2876가구, 2005년에는 7만500가구 목표에 2만1415가구에 그치는 등 공급 실적이 저조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임대주택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주공 사장을 지목해 질책한 것이다. 당시 한행수 주공 사장이 재원문제를 언급하려 하자 노 대통령은 말을 가로막으며 "돈 걱정하지 말고 공급하세요"라면서 다시 언성을 높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주공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대로 임대주택을 지으면 주공 부채가 2015년에는 70조원까지 늘어나는데 어떻게 돈 걱정 없이 지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출신인 한행수 주공 사장은 결국 연말에 물러났고, 건교부의 담당 실무자들도 교체됐다. 한행수 사장은 물러날 때 주식 차명 보유 의혹이 제기됐고 이 때문에 옷을 벗었으나 일부에서는 옷을 벗기기 위해 누군가 '작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택정책에 관한 한 딴 목소리를 내면 언제든지 반(反)개혁 세력으로 매도당할 위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2003년 11월 29일 "강남 불패라고 하는데 그 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정책 전반이 왜곡되는 일도 일어났다.
건교부는 2003년 말 주택가격 문제를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 금융 규제로 풀어야 한다고 청와대에 건의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대출문제를 조사해 보니 강남보다 강북의 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 규제를 할 경우 강남이 아니라 강북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면서 "그래서 금리인상 등금융 대책은 유야무야됐다"고 말했다.
◆"공급 확대 주장하면 업계 유착 몰려"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 초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여기에 부동산정책을 맡겼다. 위원장은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겸임했고, 김수현 현 환경부 차관이 기획운영실장을 맡았다. 노 대통령이 재경부나 건교부 등 정부 주무 부처를 실무 부처로 전락시키고 부동산정책 권한을 이 위원회에 줬다는 것은 부동산정책을 빈부 격차 해소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우 위원장과 김수현 실장은 이 일에 적임인 사람들이었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정우 위원장은 미국의 철학자 헨리 조지의 신봉자였다. 토지사유제가 빈부 격차의 원인이고, 토지불로소득의 세금 환수를 통해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100년 전 미국의 철학자 헨리 조지의 이념이 그를 통해 한국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폭탄정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3년 10·29부터 2005년 8·31대책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의 모든 부동산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김수현 실장은 대학 시절 빈민운동을 했던 임대주택 분야 전문가. 국민임대주택 확대, 비축용 임대주택, 중산층 임대주택 등이 그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이 전 실장과 김 차관에 대해 "한 사람은 보유세만, 다른 한 사람은 임대주택만 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들은 건교부의 주택 공급확대론을 반개혁적이라고 했고 업체와의 유착론까지 제기했다. 이정우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급확대론은 들판에 불이 붙어 퍼지고 있는데 물을 부어 끌 생각은 안 하고 들판에 마른 장작을 더 놓아야 한다는 사고와 똑같다"고 말했다. 김수현 실장도 정권 초기 "세금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시장의 저항만 불러올 수 있다"는 관료들의 지적에 대해 "나중에 '보유세가 찔끔 올라 집값을 못 잡았다'는 말이 나오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압박한 일도 있었다.
◆일부러 실패 유도한 반값 아파트
재경부, 건교부 관료들은 청와대에서는 코드 경쟁을 벌였지만 정치권에서 도입을 주도한 제도에 대해서는 '너희 뜻대로 되는지 어디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게 2006년 말 여야가 도입을 추진한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등 반값 아파트였다. 이는 주택공사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먼저 주장하고 열린우리당이 뒤따랐던 제도였다.
당시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반값 아파트같이 그렇게 탁월한 제도가 있었다면 진작 도입했어야지…. 그렇게 탁월한 제도라면 수십 년간 공무원들이 왜 도입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결국 "반값 아파트를 청약 미달될 만한 지역에 건설해서 말이 쑥 들어가게끔 해야 한다"면서 "나는 진심으로 이 제도가 중도 하차하길 바랄 뿐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의 말대로 반값 아파트는 비인기 지역에서 임대료와 분양가를 비싸게 책정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청와대는 "우리는 진작 반대를 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②코드에 끌려다닌 부동산 대책 청와대가 "집값 떨어질것" 한마디하면◈
건교부는 '맞춤통계' 내며 맞장구 발표
2006년 8월 24일 건통부는 상반기 아파트 실거래가 조사를 발표하면서 "강남권 아파트는 3개월간(4~6월) 14.4%, 강남권 40평대 초과 아파트는 22.4% 하락했다"고 강조했다. 건교부는 "호가(呼價)가 아니라 실거래가 기준이어서 다른 조사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했다. "강남구 등 '버블(거품) 세븐' 지역의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청와대발 '거품 붕괴론'을 뒷받침하는 통계였다. 낙폭도 예상보다 컸다. 그러나 통계청 공인 통계인 국민은행은 같은 기간에 '서울 5%, 강남구 6% 상승'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무려 20~30%포인트 차이가 났다.
당시 건교부 통계를 자문했던 한 전문가는 "건교부식 통계는 계절적 특성이나 거래 단지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단순 산술 평균이어서 현실 왜곡이라고 비판했지만 관료들은 막무가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교부의 조사를 국민은행 방식으로 통계처리하면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부동산 시장을 경제논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코드'(이념)로 이끌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통계도 '코드'로 윤색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지방에 풀린 돈을 추적해 보니 거의 부동산 투기와는 관계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건설 등을 위한 토지보상금이 서울 집값 급등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였다. 건교부는 한달쯤 지나 "지방 보상금의 수도권 주택 투자비율은 3%에 불과, 서울 집값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조사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몇몇 건교부 간부들은 사석에서는 "보상금을 받아 주변 토지를 사고, 그 토지를 판 사람이 수도권의 주택을 구입하는 연쇄거래를 아예 배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털어 놓았다. 때문인지 건교부는 현금 대신 토지나 채권으로 보상하는 대토보상제 등 보상금을 줄이는 대책을 줄줄이 내놓았다.
이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강남 집값을 겨냥한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강남 집값이 더 오르자 '세금폭탄'을 남발했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통계 각색'도 등장했다. 갓난아이까지 포함된 전 국민 중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28.7%(2005년)에 불과하다는 행정자치부의 통계가 대표적인 '뻥튀기 통계'로 꼽힌다. 이를 가구별로 통계를 내면 60%에 근접한다.
재경부는 보유세율 인상의 근거로 '미국의 실질 보유세율 1%'를 내세웠다. 그러나 조세연구원 노영훈 박사는 "미국의 경우, 지역마다 보유세율이 다르고 우리와 달리 보유세 대부분이 해당 지역의 교육 재정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박사는 공개토론과 학술발표를 통해 이런 주장을 펴다 2005년 말 징계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