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직원들 ‘내부비리 폭로’ 발언에 격앙
공정방송노조 “이사회서 적자 누적 등 따져야”
누리꾼들 “비리 밝히긴커녕 회사협박 기가막혀”
KBS 정연주 사장이 지난달 22일 노조 간부와의 만남에서 ‘나를 건드리면 내부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본보 21일자 A1면 참조 ▶ 정연주 사장 “나를 건드리면 KBS비리 폭로” (클릭하면 기사를 볼 수 있음)
정 사장의 발언은 15일 ‘KBS기자협회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KBS 기자 전용 게시판에 올랐으며, 본보 21일자 보도를 통해 이 발언을 접한 PD직 기술직 등 다른 직종의 직원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본보는 이 문건을 20일 입수했다.
중견 직원들의 노조인 KBS 공정방송노조는 21일 ‘KBS 이사장에게 드리는 글’에서 “(이사회가) 정 사장의 경영 실패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사장에게 경영 실패 책임을 물어야=공정방송노조는 ‘KBS 이사장에게 드리는 글’에서 “정 사장이 임기(2009년 11월) 운운하며 ‘나를 건드리면 KBS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노조를 협박한 것은 후안무치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공정방송노조는 또 “정 사장 재임 기간 중 1500억 원에 달하는 누적적자와 올 적자 예산 편성 등 경영 실패를 감안해 이사회가 정 사장에게 ‘실패한 경영 성과에 대해 방송법 규정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PD는 정 사장의 발언에 대해 “정 사장이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한 채 5년을 허송세월하다가 노조의 퇴진 요구를 접하자 ‘비리 폭로’ 운운하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 발언 어떻게 확산됐나?=KBS는 21일 경영진 일동 명의로 사내 통신망에 ‘KBS 비리 폭로 기사에 대한 회사 입장’이라는 글을 올려 정 사장과 노조 간부의 만남은 인정했으나 해당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
KBS는 이 문건에서 “정 사장이 1월 22일 노조 간부와의 만남에서 회사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KBS에선 비리가 없고 사장이 비리를 언급한 적도 없으며 왜 ‘비리’라는 표현이 생산 확대되는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사장의 발언은 노조 간부가 정 사장과 만난 다음 날인 1월 23일 노조 집행위 회의에서 공개하면서 확산됐고 이 발언을 전해들은 일부 직원 사이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노조는 정 사장의 발언 이후 20여 일이 지난 이달 13일 노보를 통해 “정 사장은 KBS인들이 최소한 희망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정 사장의 퇴진을 공개리에 요구했다. 이틀 뒤인 15일 KBS 기자협회 운영위원회 관계자는 노조 회의에서 정 사장 퇴진과 관련한 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 상황과 정 사장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같은 날 ‘사장퇴진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발언 내용을 게시판에 올렸다. 이 문건은 노조 간부가 정 사장에게 “(문제의) 발언을 공개해도 되느냐”고 물었으며, 정 사장은 “된다”고 했다며 발언 당시 정황을 함께 전했다. 이 문건은 또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특정인과 관련한 노조의 입장도 들었으며 기자협회 운영위원회는 노조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직원은 “정 사장의 발언이 노조 집행부 회의에서 논의됐다는 얘기를 지난달 말에 들었으며 기술직 등은 대책 마련을 위해 기술직 중앙위원들을 소집하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꾼 반응=동아닷컴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정 사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ID ‘mk5104’는 “하급 직원이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회사를 협박하는 건 종종 봤으나 사장이 비리 폭로로 회사를 협박하는 건 처음”이라며 “공영방송 사장이 폭로하겠다는 비리가 무엇인지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firneedle’은 “공기업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직 내 비리가 있으면 진작 밝혔어야지 개인을 위한 협박용으로 쓰다니 뭐하는 거냐”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