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방송

방송의 두 얼굴 - 조선일보에서

modory 2009. 6. 7. 17:30

◐방송3사 '노무현 찬가'로 돌변◑ 상황따라… 2578분간 추모특집

2009.06.06 일자 조선일보 기사임w

두 얼굴의 방송
■이랬던 방송사들 "혼자 깨끗한 척했다… 법대로 원칙대로 처리" 엄정 수사·해명 요구
■서거 후(後)미화로 "순교자… 서민 대통령" 국민들 감성에 호소 유례없는 물량 공세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선처한다면 앞으로 뇌물 수사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노 전 대통령 서거 전, 5월 1일 MBC 논평)

"노무현은 원칙에 대한 결벽증 환자였습니다. '바보 노무현'의 결벽증에 가까운 원칙과 도덕에 대한 집착…."(노 전 대통령 서거 후, 5월 24일 MBC 뉴스데스크 )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서거를 전후해서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가 돌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송사들은 서거 전날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해명을 요구했지만, 서거 이후에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고 노 전 대통령을 원칙과 도덕을 지킨 깨끗한 정치인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서거 이전, "깨끗한 척하던 사람…"

MBC는 지난 4월 13일 '노 전 대통령, 아직도 구차하다'는 논평에서 "도덕과 원칙을 내세웠던 전임 대통령이라면 먼저 부인이 받은 100만달러를 어떻게 썼는지 밝혀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허망한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3일 논평에서도 MBC는 "혼자 깨끗한 척하던 사람의 항복 선언"이라며 "자신의 말마따나 많은 사람의 분노와 비웃음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고 했다.

KBS·SBS는 지난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날은 헬리콥터에서 찍은 항공촬영 영상까지 동원, 현장을 중계했다. 한 방송사는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에 취재차를 바짝 붙여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보시다시피 창을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버스 내부에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측근들이 동승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당시 상황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이 보도했다.

KBS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던 날 '뉴스9'에서 17건의 관련 뉴스를 방송하며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도덕성 청렴성을 정치 신념으로 삼아 왔는데, 그 가치가 돈 앞에서 바래가고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방송사들은 '청와대에서 100만달러 수수' '권 여사가 빚 갚는 데 썼다던 3억원이 정 전 비서관 차명계좌에서 발견' 등 검찰 수사 결과가 흘러나올 때마다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SBS에서는 5월 13일 '뉴스8'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원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 MBC는 논평을 통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으나, 서거 후 보도프로그램에서는“원칙과 도덕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는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다. 왼쪽은 지난 5월 1일‘뉴스24’, 오른쪽은 5월 24일‘뉴스데스크’.(사진 위)/MBC 방송 화면 KBS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청렴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다”는 내용의 평가를 방송했다. 하지만 서거 이후에는‘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간 정치인’이라는 보도 등을 내보냈다. 왼쪽은 4월 30일‘뉴스 9’, 오른쪽은 5월 29일 같은 프로그램.(사진아래)/KBS 방송 화면

서거 이후, "순교자적 행동…"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직후 바뀌었다. 서거 이전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모두 연루된 비리 의혹을 파고들던 태도에서 돌변,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다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피의 사실을 고의로 흘렸다는 식의 주장도 나왔다.

5월 24일 SBS는 주말 황금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을 대신해 추모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MBC는 시사매거진 2580을 노무현 관련 특집으로 방송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바보 노무현' '서민 대통령' '퇴임 후 소탈한 시민' 등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그동안 쌓인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KBS '뉴스9'는 5월 29일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 나게 이어지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며 "적어도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외쳤지만 그의 노력은 비극적 결말 속에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미완의 도전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MBC는 5월 24일 뉴스데스크에서 "인생을 승부 속에 살아온 노 전 대통령이 생의 끝에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나 아침 방송 등은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MBC '뉴스 후'는 5월 28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이명박 대통령, 검찰, 조중동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라는 발언을 내보내면서 마치 다른 언론사들의 수사 관련 보도가 잘못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비슷한 시기 MBC와 SBS 등 대형 방송사 노조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언론노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정권과 검찰, 조중동이 공모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KBS 추적60분은 5월 29일'추모특집, 노무현 떠나다'에서 "노 대통령께서 순교자적인 행동을 취했고, 그 결과로서 우리 대한민국이 배려와 화합, 통합의 정치문화, 지역 계급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같이 더불어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서 스스로 희생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발언을 그대로 전했다.

추모 특집 2578분…유례없는 물량 공세

방송사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쏟아 부은 방송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방송개혁시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3대 지상파 방송사가 이 기간에 내보낸 추모특집 프로그램은 총량으로 2578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방송사가 거의 이틀 내내 광고도 없이 쉬지 않고 방송한 것과 같은 분량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똑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단적으로 MBC는 지난 5월 24일 밤 뉴스데스크를 두 시간짜리 특집으로 편성하면서 한 프로그램에서 동일한 기자가 같은 내용의 리포트를 두세 차례씩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TV가 전하는 '바보 노무현' '서민 대통령' 같은 이미지를 쉴 새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