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패륜 '백화점' 근친상간도 '운명'으로 상황설정 신종 '패륜 바이러스' 퍼뜨린다 "시청률만 올리면 그만" 기발한 불륜 찾는데
혈안 '가족해체' 죄책감 없어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방에 가둬둔 채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지고, 그 시어머니를 국도변에 버리는
며느리(KBS 2TV '장화홍련'), 유산 욕심 때문에 쓰러진 아버지를 수술하면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아들(SBS TV '카인과 아벨'),
하루에도 수차례 어머니에게 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12살 어린이(SBS TV '긴급출동 SOS 24')….
돈벌이에 눈이 먼
TV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패륜(悖倫)적 내용으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끔찍한 현장이 아침저녁으로 안방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TV는 지난 수년간 오염된 언어를 쏟아내면서 '품격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TV에서
쏟아지는 욕설과 비속어는 점입가경 수준. "×까세요", "난쟁이 똥자루 같은 ××야", "개 ××× 소리 하고 자빠졌네", "왜 지랄이야",
"변태, 또라이, 완전 망나니" 등은 지난 1년간 TV를 통해 방송됐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막말이다. 방송언어 관련 방통심의위
제재 건수는 2005년 4건에서 2006년 18건, 2007년 32건, 2008년 36건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제는 언어 오염에
더해 패륜적 내용이 드라마와 교양 프로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수식어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악다구니,
폭행, 불륜은 기본. 자신의 치부를 알게 된 가족들을 버리거나 해코지하는 장면('장화홍련'), 유산을 받기 위해 동생의 살인을 청부하는('카인과
아벨') 장면까지 나온다. 작년 말까지 방송된 MBC TV '흔들리지마'는 형부와 처제가 불륜 행각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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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TV가 '페이크(가짜) 다큐'라는 이름으로 말초적인 내용을 다루면 이어 지상파 TV
'교양' 프로그램도 이런 소재를 다루면서 패륜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케이블 E채널 '블라인드 스토리 주홍글씨'는 최근 자신의 남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한 여성이 딸에게 불륜 현장을 들키고도 이혼 요구를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내보냈다. tvN '스캔들 2.0' 또한 가정을 둔
남자가 자살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한 뒤, 다른 여성 회원을 겁탈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지상파인 SBS TV 'TV 로펌 솔로몬'에서는 2월 같은
여자와 바람피우는 동서지간 남자들이 맥주병으로 치고 때리는 장면이 방송됐다. 속고 속이고, 가족에게 폭력을 쓰는 '패륜'의 반복은 이제 TV의
일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무의식중 가족을 경시하고 사회규범을 무시하는 경향을 심어주게 된다고 지적한다.
미성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직접적이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유미숙 교수는 "어린 아이일수록 TV에서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상황을 접할
경우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1. 며칠 전 회사원 김모씨는 저녁식사를 마친 뒤 유치원생 딸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 깜짝 놀랐다. 불륜인 남녀가 관계 후 흐트러진 차림새로 모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 SBS TV '두
아내'다.
#2. 성남에 사는 40대 가장 박모씨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동창과 찍은 사진을 본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혹시
불륜이냐?"고 물어본 것. 박씨는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벌써 '불륜'이란 개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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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어머니 가둬놓고 불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옆방에 가둬놓고 불륜을 즐기다 발각된 며느리. KBS 2TV
아침연 속극‘장화홍련’의 한 장면이다.
◆가족 간 폭력은 당연한 일?
요즘 TV의 메시지는 '가족을 버려라'. MBC TV '하얀
거짓말'에서는 지난달 16일 아버지 무덤 앞에 선 아들 '정우'가 '큰어머니'라 부르며 모시던 '신여사'(극 중 아버지의 본처) 목을 조르는
내용이 방송됐다. '큰어머니' 대사는 이랬다. "네 아버지가 내 뱃속 아이를 지우게 하려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때리는 것도 모자라 약까지
먹이더구나. 싫다고 발버둥치는 나를 억지로 잡고 토해내는 약을 그대로." 그러나 아버지를 자살로 몰고 간 장본인은 바로 이 신여사. 드라마는
'막장 인간'의 전시장이다.
미취학 아동들이 접근하기 쉬운 각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는 불륜의 온상이다. 본지 확인 결과 2004년
이후 방송된 MBC TV 아침 드라마 11편 중 9편이, SBS TV 아침 드라마 15편 중 10편이 불륜을 다뤘다. 불륜 소재의 드라마에서는
막말, 가족 간 폭력은 기본. 요즘 방송사들은 더욱 '기발한' 불륜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됐다. 케이블 E채널 '블라인드 스토리 주홍글씨'는
최근 고교생인 아들의 담임교사와 불륜을 즐기다 교사를 협박해 수억원을 뜯어낸 학부모의 이야기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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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제와 부적절한 관계 작년 말 종영한 MBC TV‘ 흔들리지마’한 장면. 처제를 사랑하고 있는 형부가 그
감정을 담아 뒤에서 껴안고 있다.
◆막장 드라마의 탈출구, '출생의 비밀'
틈만 나면 튀어나오는 '출생의 비밀'은 패륜적 소재를
눈속임하기 위한 장치다. KBS 2TV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 SBS TV 드라마 '순결한 당신' 등은 모두 '근친상간'의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과거를 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꾸며져 방통심의위
징계를 피해갈 수 있었다. 방통심의위 김종성 팀장은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35조'에 따르면 혼음이나 근친상간 같은 내용은 방송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그러나 요즘엔 근친상간이나 불륜 내용을 기묘하게 섞어 처벌하기 애매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패륜까지
파는 이른바 '교양' 프로
교양으로 분류되는 일부 프로그램들은 시청자 계도와 피해자 구제를 내세우며 현실의 패륜을
생중계한다. SBS '긴급출동 SOS 24'는 4월 80대 노모를 매일 같이 때리고 협박하는 40대 아들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줬고,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은 3월 '막장 사위와 막장 며느리'라는 제목으로 장모에게 가스총을 쏴 다치게 한
사위, 시어머니를 30여 차례 폭행한 며느리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강승구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광고 수주에
다급해진 방송사들이 상업성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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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에게 흉기 든 아들 SBS TV 교양 프로그램‘긴급출동 SOS 24’는 최근 어머니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쇠파이프 등의 흉기를 휘두르는 12세 아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방송했다.
◆죄의식 없는 제작진
심각한 건 방송사가 이런 막장 프로그램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국 고위 간부는 "소재가 원색적이라 해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그것 또한 '문화 코드의 하나'로 이해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하얀거탑'을 쓴 이기원 작가는 "일부 신인들 사이에 패륜과 불륜을 앞세운 '막장'이 새로운 드라마 작법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 성폭력 부추기는 TV
TV가 살포하는 패륜 바이러스가
미성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청소년기는 내재된 분노가 많은 시기인데, TV에서 쏟아지는 패륜
드라마가 이들의 잠재된 분노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불륜과 외도, 성폭력 장면이 미성년자들에게 왜곡된 관념을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폭력 가해자 상담을 해온 전남대 심리건강연구소 김석웅 연구원은 "여자를 강간한 뒤 결혼하는 장면이 버젓이
지상파 드라마에서 방송되면 어린아이들은 성범죄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는
2006년 1811명에서 2007년 2136명, 2008년 2717명으로 늘었다. 아동성폭력전담센터 해바라기연구소의 신기숙 소장은 "TV의
영향으로 성폭력을 장난이나 놀이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