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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미디어 법 - 조선일보에서

modory 2009. 8. 5. 08:21

 [조선일보 김창균 칼럼]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 하는가   2009.08.05 03:19

10년 집권 시절 내내 '언론 장악'에 온 힘 쏟더니
처지 달라졌다고 약자(弱者) 흉내내며 남 공격하나"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선 민주당은 전국을 돌며 네 쪽짜리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홍보물 세 번째 쪽엔 '언론악법 시행되면 어떤 일이(벌어질까)'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그 1번 항목이 '조중동 TV- 땡박 뉴스 등장'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대한민국 대표 반민주·반서민·반통일 수구 언론입니다. 이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뉴스까지 만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평소 버릇대로 왜곡 조작보도는 일상사일 테고, 오로지 이명박 정권을 칭송하고 소수 특권세력의 비위만 맞추는 '땡박뉴스'에 혈안일게 뻔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이 홍보물을 읽어 내려가면서 먼저 고개를 드는 의문은 '민주당 시계는 30년 전으로 되돌려진 것일까'였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음 의문은 '민주당은 지난 10년 집권 시절 자신들이 한 일을 까맣게 잊은 것일까'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 끝자를 딴 '땡박뉴스'는 1980년대 '땡전 뉴스'의 패러디일 것이다. "9시를 알려 드립니다. 땡땡땡"이라는 시보가 끝나자마자 시작되던 당시 9시 뉴스의 첫머리는 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되는 대통령 동정기사였다.

'땡전 뉴스'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1986년 시청료 거부운동을 통해 분출됐다. 시청료 거부운동 취지문은 "시청료와 막대한 광고수입으로 운영되는 방송이 시청자들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정부의 국민 지배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민주당의 뿌리에 해당하는 당시 야당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시청료 거부운동에 앞장섰었다.

1997년 대선에서 '50년 만의 권력 교체'가 이뤄지고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권력의 시녀' '권력의 나팔수'로서의 방송의 역할은 막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그 정치적 동반자들은 '땡전 뉴스'의 폐해를 오랜 세월, 누구보다 절절하게 느껴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권교체는 '권력의 주인'을 바꾸어 놓았을 뿐, '권력의 속성'을 바꾸지는 않았다. 김대중 정권은 무엇보다 먼저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핍박하던 방송과 상당수 언론의 곡조는 '대통령 김대중'에 대한 칭송으로 변했다. 김대중 정권 2년차에 야당 의원이 폭로한 '국정원 언론 장악문건'은 "현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조선에 이어 동아가 야당지로 선회했다"면서 "조중동 세 신문 중 하나는 친여지로, 나머지 2개도 반정권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 무렵 조선일보의 슬로건 '할말은 하는 신문'은 권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던 외로운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몇몇 '까칠한 언론'들이 태도를 끝내 바꾸지 않자, 강도높은 세무조사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김대중 정권을 승계한 노무현 정권은 아예 '언론과의 전쟁'을 권력의 동력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세 신문에 '조폭(粗暴)'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부수를 50~100만부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 신문의 구독자수가 꿈쩍하지 않자,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시장 점유율을 법으로 바꿔 놓으려는 무리수까지 뒀다. 자신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언론을 탄압한다는 권력의 본질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그들이 비판했던 권위주의 정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10년 만에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민주당은 '언론 전쟁' 3막을 진행 중이다. 30년 전 야당 시절의 언론 전쟁 1막이 '권력 편에서 야당을 탄압하는 방송 언론에 대한 저항'이었고, 지난 10년 여당 시절 2막이 '권력에 호락호락하지 않는 몇몇 신문에 대한 길들이기'였다면, 새로 시작되는 3막은 '여당 시절 조성해 놓은 우호적인 방송 언론환경 지키기' 차원이다.

민주당은 이 싸움을 위해 30년 전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약자 이미지로 자신을 다시 분칠하고, 그 시절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땡전 뉴스' 슬로건을 되살려내 국민을 선동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30년 전 그 야당이 아니라 10년 동안 집권했던 구(舊) 여권이며, 집권시절 '내 편' 언론을 키우고 '네 편' 언론을 짓누르기 위해 어떤 일을 했었는지 사람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법은 현 정권의 언론장악음모"라는 민주당의 외침은 "누가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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