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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MBC에선 뜻밖의 사건 두 건이 터져 시청자를 경악시켰다. 하나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세경과
지훈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막 내린 것이고, 또 하나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이 전격 사퇴한 일이다.
뉴스가치로만 따지면 ‘김우룡 사퇴’가 더 크다. 하지만 이튿날 각 매체가 네이버에 내보낸 화면엔 이보다 ‘세경-지훈
동반사(死)’ 기사가 훨씬 많았다. ‘지붕 뚫고…’는 청춘남녀의 제명을 못다 한 충격적 엔딩 때문에
호러콤(호러+시트콤)이 됐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김우룡 사태 역시 MBC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못다 했을 뿐 아니라 노영(勞營)체제를 공고히 만들 빌미를 줄지 모른다는 점에서 호러콤이 될
소지가 있다.
노조에 90도 절하며 인사문제까지 협의했던 김재철 사장은 “MBC 중립을 훼손할 경우 권력기관이든
방문진이든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MBC 노조위원장과 사장을 지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방문진의 MBC 관리 감독권을 삭제한 법안’을 국회에 내겠다며 기세등등하다.
누가 MBC 사장이 되고, 누가 방문진 이사장이 되는지에 나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단
MBC가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이용하는 한, 공정성만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이어야 MBC도 산다는 건 말할 수 있다. MBC는 언제나 공정하므로 아무도 건드려선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자격이 없다. MBC는
편파방송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상태다. 公正방송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세계의
유수한 공영방송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 바로 공정성이다. 우리 방송법이 지향하는 가치도 같다. 케이블방송인 미국 폭스뉴스와 영국의 차이를 보면 공정성이
뭔지 알 수 있다. 탄생부터 우파 편인 폭스뉴스는 관점이 있는 뉴스를 지향하지만, BBC 보도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정확성과
불편부당(impartiality)이다. 공공정책과 정치적 논란이 있는 문제에 결코 특정 견해를 홍보하지 않으며 기자의 의견 제시도 금지한다.
다양한 전문가의 식견을 전달해 시청자들의 판단을 도울 뿐이다. 공영방송이란 방송사나 그 구성원이 아니라 ‘사주(社主)인 시민 전체’의 견해를 소수의견까지 충실히 반영하는 공론의
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을 인간 광우병으로
허위보도하고도 자체조사 한 번 안한 MBC는 공영방송이라고 자처할 처지가 못 된다. 꿈같은 상상이지만 만약 어떤 여론조사에서 70%가 MBC를
지지한다 쳐도 “MBC가 옳다”고 주장하는 건 공정보도가 아니다. “70%가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데 그쳐야
맞다.
더구나 MBC는 1969년 지상파 전국방송 개시 전부터 정권의 시혜를
받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영방송론’을 쓴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MBC가 권력의 도구로 이용당해왔다”고 했다. 1958년 부산문화방송
허가에 대해 당시 집권당 실력자와 인척관계를 이용했다고 사사(社史)는 기록하고 있다. 5·16군사정변 후 5·16장학재단에 소유권이 넘어간 덕에 전국 도시의
독립법인을 계열화해 전국방송을 할 수 있었고,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민영화된 뒤엔 유신말년까지 연간 수익을 360배나 성장시켰다.
1980년 ‘언론학살’ 때 신군부에 의해 공영방송으로 위장돼 살아남은 것이 특혜라는 점도 재론할 필요가 없다.
(▶편집자 주: 이 부분은 옮긴 이의 글 ⇒MBC는 전두환 군부가 정권을 잡자 전두환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바람을 잡았고 KBS보다 신 군부에 아양을
떨었다. MBC는 이때 철저하게 기생 첩 기질을 완벽하게 발휘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시민들로부터 취재차량을 공격당했던 수모를 MBC는 기억하기 바란다. 6·29선언이 나오자
“그동안 진실을 왜곡 조작함으로써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이제부터 공정한 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했던 과거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권의 나팔수로 혁혁한 공을 세운 MBC다. 노조위원장이 사장보다
더 큰 결정권을 휘두르고, 게이트키핑(내부체크시스템) 없이 왜곡방송을 내보내고도 언론자유라고 포장하는 공영방송이 세계 또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