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방송

kbs와 김미화

modory 2010. 7. 16. 05:35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태평로 날개 단 방송인, 기는 KBS

2010.07.14 조선일보
▲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해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송인 김미화씨가 트위터에 이른바 '블랙리스트 발언'을 한 게 지난 6일이었다. KBS는 다음날 김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진중권·유창선 같은 이들까지 김씨 발언이 맞다며 거들고 나오자 KBS는 이들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일부 매체들은 개인을 상대로 거대 방송사가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맹공격했다. 단순히 각각의 힘의 크기로만 말한다면 그들 주장이 맞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김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토씨 하나 고쳐지지 않은 채, 수백건의 인터넷 기사로 확대 재생산됐다. 쌍방의 발언을 고루 다루는 게 기본이라 알고 있는 정상적 언론은 김씨와 KBS 주장을 중립적으로 다뤘지만, 일부 매체는 달랐다. 주어-술어 호응도 맞지 않는 조악한 기사라도 일단 띄우고 보는 좌파 매체들은 '김미화 vs. KBS'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미 다 정해놨다. 앞서 윤도현·김제동씨 하차 사건 때도 비슷하게 반복됐던 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이걸 '거대 권력과 개인'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라가 좌파―우파, 보수―진보 두 쪽으로 조각난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발언은 "우파 정부 치하에서 나, 좌파라서 당했다"는 말이다. 단, 유명인이 해줘야 한다. 물론 유명인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식의 6하 원칙에 따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화두를 던질 테니, 싸움은 너희가 하라'는 식이다.

사실 이제 트위터·블로그·싸이에 글을 올리는 것은 고도의 상업행위이자 정치행위가 됐다. 이런 세상에 '절대 강자'는 조직의 크기나 자본력이 아니라 개인의 유명도에 따라 결정된다. 더 많은 폭로, 더 많은 공방이 이어질 게 뻔하다. 우리나라 방송인·연예인은 머리가 좋다.

KBS가 얼마나 정파적 조직이었던가 하는 깨달음은 이 사건에서 덤으로 얻은 교훈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정치 보복'으로 짐작될 조치를 당한 방송인이 꽤 있다. 한창 인기가 올라가고 있을 때 이회창 대선 후보를 지지했던 개그맨 심현섭은 '2002년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상 수상자로 내정됐다가 취소됐다'고 주장했고, 정치적 활동이 없었던 40년 경력 김동건 아나운서도 정연주 사장 시절 "다음주부터 '가요무대'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 얘기는 화제가 된 적이 없을까. '표현의 자유' '출연의 자유'를 역설하는 좌파 매체들은 이런 사람들 권리엔 관심이 없고, 정상적 언론은 맞거나 말거나 식의 무식한 물량공세를 펴지 않기 때문이다.

KBS를 공격하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냄새가 난다'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방송사의 전력이 만든 업보다. 그러니 정확한 방송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고 지적받거나 '감(感)'이 전보다 떨어졌다고 평가받은 방송인들이 모두 '정치 탄압'을 주장하면서 자리를 지키려 하는 것 아니겠나.

더 걱정스러운 건, 앞으로도 KBS는 정권 향방이나 사장 취향에 따라 언제든 '안면 바꾸기'를 할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긴 파업을 해도 기껏해야 '1박2일' 같은 예능프로그램에나 차질이 생길 정도로 사람도 많고 일 안 해도 걱정 없는 조직이니, 정권 취향에 맞춰 내놓을 '인사 카드'도 풍부할 것이다. 직장으로서야 '신의 직장'이겠지만, 시청자로선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