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본부 (2010.10.25)는 국민들 손으로 ‘거짓말쟁이’ 박지원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리자고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을 들어보면 사사건건 反국가단체와 학살자를 감싸더니, 중국정부의 제2인자 발언까지 날조, 祖國을 욕보이려 한 반역자! 그를 감싸는 민주당에 정권을 줄 만큼 어리석은 국민들이 아니다. 1.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민주당 원내대책 회의에서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 習近平(시진핑) 중국 부주석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는가"라며 한국정부의 對北정책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중국정부의 공식 否認(부인)과 대화기록 등을 통하여 날조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야당의 원내대표가 중국 제2인자의 발언까지 조작, 조국을 욕보이고, 두 나라를 이간질 시키고, 김정일 정권을 감싸려 했다.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선동이고 利敵행위이다. 박지원은 법적 책임을 지기 이전에 자진하여 政界를 은퇴하라. 2. 국민들은 박지원씨가 김대중 정권 시절 권력을 남용, 현대그룹을 앞세워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 등으로 4억5000만 달러를 不法송금한 사건의 주모자임을 잘 안다. 우리는 감옥에 갔던 그가 어떻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면서 그의 행태를 주시해왔다. 그는 前過를 반성하지 않고, 從北的(종북적) 행태를 지속해왔다. 천안함 爆沈이 북한소행이란 사실도 부인하고, 김정은의 3代 세습도 북한의 상식이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이다. 김정일-김정은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고, 그들이 좋아할 일과 祖國에 불리한 일들만 골라서 한다. 이런 자가 장관 후보자들의 약점을 캐는 것은 뭐 묻은 X가 뭐 묻은 X를 나무라는 격이다. 韓民族 가운데 이보다 더한 事大, 賣國, 利敵, 僞善을 저지른 사람은 드물다. 利敵행위가 전공인 이런 인물을 감싸는 민주당은 매국노 이완용을 욕할 자격도 없다. 이런 집단에 정권을 줄 만큼 어리석은 국민들이 아니다. 3. 국민들은 '제2의 김대중'을 원하지 않는다. 거짓말이 들통 난 다음에도 치사한 변명을 하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에겐 절대로 公職을 맡겨선 안 된다. 公職 말고도 먹고 살 방법이 많은 데 왜 하필 국민세금을 축 내는 公職을 맡는가 말이다. 민주당이 박지원을 정리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민주당을 정리할 것이다. 명명백백한 진실까지 외면하고 사사건건 反국가단체와 학살자를 감싸는 민주당은 바보집단이거나, 반역집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10월29일(금) 오후 2시 프레스 센터 20층에서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反共소년 이승복을 지켜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2010년 10월 25일 국 민 행 동 본 부 ◎아래 글은 이멜로 날아 온 글◎ ▶박지원의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고모, 들의 과거 활동사◀아무리 연좌제가 없다지만 요즘 이자의 날뛰는 꼴을 보자하니 제 놈 집안의 망령들이 되살아 나는듯 하네!천안암사건도 북괴의 소행인지 아닌지 모르니 국정조사를 해야한다고 우기니....이런 !요즘 얼마나 거들먹 거리는지....
한때 이렇게 죽을 시늉쇼를 했던 자......
권세자 박지원 의원의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그리고 고모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해방 - 서울 소공동 근태빌딩에는 일제 때
돈을 인쇄 하던 정판사란 인쇄소가 있었다. 왜놈 기술자 “쫑”으로
있던 박지원 조부 박낙종은 해방이 되자 왜놈 사장이 버리고 간
인쇄소 정판사를 꿰차고 사장이 된다.
그는 공산당 열성 신도였다. 해방 두 달 뒤, 10월 15일,
정판사 사무실에는 공산당 제정부장 이관술, 박락종 사장이
위조지폐 인쇄를 모의, 박헌영과 김상룡에게 보고했다.
박헌영은 무릎을 쳤다. “그래, 돈만 찍어 낼 수 있다면 이 나라를
먹는 건 식은죽 먹기다.”
10월 22일, 이들은 네 차례에 걸쳐 1, 500만원을 찍어 냈다. 모두
1억원을 찍어낼 심산 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꼬리가 잡혔다. 작업에 동참했던 딸이 지폐 인쇄판을
팔려다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대가 이재원 등 7명을 체포한다.
보고를 받은 박헌영은 잔대가리를 굴렸다.
5월 17일, 구속된 정판사 직원 14명은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공산당은 성명을 발표한다. 경찰들이 증거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중 이었다.잡혀있는 김낙기 부인이 면회를 할 때 부인은 남편에게
담배를 건네는 것이 발각됐고, 담배속에는 "김동무, 사흘만 버티면
30만원을 지불 하겠소"라는 쪽지가 발견된다. 수사반은 확신을 갖게 된다.
같은 시간, 서울 장안빌딩 공산당 아지트에서는 김상룡이 박헌영에게
"김낙기처가 사식을 넣을 때 지령을 전달했습니다. 이제 경찰 놈들이
억지를 쓴다고 선전만 쎄게 하면... 박헌영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경찰계장이 집적 용의자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드디어 용의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1, 500만원을 찍어 해방일보
사장과 공산당 재무부장이 전부 가져 갔습니다."
그들의 자백에 의하여 5월 7일 가담자 16명 중 간부 3명을 제외한 14명을
체포된다.
30여 회의 공판에서 공산당은 사건을 담당한 판사, 검사를 협박하고
공판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10여 명의 좌익 변호사들 재판 기피로
폐정까지 연출된다.
1946년 5월 14일, 수도 청장 장택상은 기자 회견을 갖고 "이번
위조지폐 사건은 공산당이 한국 경제를 교란시키고 조직 확대를 위해
벌인 천인 공로할 사건입니다."
장택상의 기자회견은 석간신문에 대서 특필됐고 국민들은 경악 했다.
신문을 읽은 국민들은 한마디씩 했다: "민족, 진보, 수구, 껄텅 거리던
뻘갱이 들이 드디어 일을 저지르는구먼, 속 빨간 놈들..."
박헌영은 혜화동 아지트에서 석간신문을 모조리 읽었다. 그 옆의 김삼룡과
이주희도 침통한 얼굴로 장택상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투덜거린다. "투쟁,
투쟁하시요 전국에 투쟁 지령을 내리시오" 박헌영이 눈에 불을 켜며 고함
을 쳤다. 전국 주요 도시에 벽보가 붙기 시작 한다.
"인민이여 위폐사건은 날조다, 장택상을 타도하자!" 부천 변두리
북덕방 늙은 푼수머슴 허돌이는 "맞아 장택상이 꾸민 일이야!"
맞장구를 쳤다.
20여개 신문들은 증거가 없는 위폐사건을 장택상이 공산당을 잡기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쓰기 시작 했다.
좌빨의 억지 투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 한 것이다. 박헌영은 경찰서 안에
있는 뻘갱이들에게 끝까지 오리발 투쟁을 벌이라는 지령을 내리고, 제 2인
자인 가짜 김상룡을 체포시켜 경찰서 안의 분자들과 접촉하려 했으나 가짜
는 조재천 검사의 기지로 발각된다. 가짜 김상룡이 들통 나고 몇 분 만에
조검사 앞에 한통의 편지가 전달된다. "조선생, 판단에 앞서 타협이
있음을 아시오,
김상룡." 편지를 본 조 검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나 김상룡이요, 우리 공산당 조직을 만만히
보지 마시오,
지령만 내리면 행동할 많은 전사가 있다는 걸 명심 하시오."
조 검사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경찰서 안에 얼마나 많은 세작들이 있길
래..”
좌익들은 담당 경찰계장의 집을 폭파했다.
가짜 김상룡 사건과 경찰직원 집 폭파 사건은 면밀히 보도 되고 위폐사건
은 점점 좌빨들이 불리해 진다.
공산당은 이 사건으로 최신식 인쇄소를 빼앗겼고 해방일보(박헌영 주간).
중앙일보(여운형 주간). 인민일보(이영수 주간)등 한걸래 신문 세 개가
폐간 된다.
그런데도 경찰서에 잡혀있는 박락종 이하 뻘갱이들은 고문으로 정신이
돈 것 처럼 노래를 부르고 발광투쟁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테러에 대비해 현장 검증도 비밀리에 했다.
법정에서는 난동이 벌어졌다. 김창선이 법정에서 웃옷을 모두 벗고
상처투성이 몸을 보이며 고문의 증거라고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박헌영의 지령에 따라 대못으로 자해 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박헌영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 된다. 박헌영은 졸개들에게 투쟁하라는
교시를 남기고 관속의 시체로 위장해 서울을 벗어나 포천 뒷산에서
관에서 나와 38선을 넘어 월북한다.
김일성은 박헌영이 자기 수하로 온다는 말에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 했다.
박헌영은 북한의 부수석이 되어 남한의 조직을 동원해 이승만 암살사건,
장택상 수류탄 암살사건, 제주도 폭동, 여수, 순천 폭동 등 6.25전 남한
전역을 혼란에 빠트리다, 김일성과 6.25를 일으켰으나 전쟁 후 김일성에게
처형당했다.
정판사 사건은 1945년 10월 20일부터 6회에 걸쳐 사장 박낙종 등 조선
공산당 7명이 남한에 공산정권 수립을 위하여 당의 자금 및 선전활동비를
조달하고 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위조 지폐를 발행한 사건이다.
11월 28일, 선고공판에서 박지원의 조부 박낙종과 이관술, 송언필, 김창선
등 주범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는 10-15년 형이 선고된다. 6.25가 터지
고 이들은 일제히 사형에 처해진다.
박지원 조부 박낙종은 목포 교도소에서 사형으로 처형되었다.
박지원 아버지와 큰 아버지도 경찰에 사살 당했다.
박지원 부친 박종식(1910년생)은 1940년 부터 해방 될 때 까지 45년까지
고향 진도에서 일본인 하수인으로 목화 수매 책임자로 일했다.
박지원 아버지 박종식은 제갈 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목포상고 동문이다.
해방 후 박종식은 남로당 진도 책임자가 되고 삼촌 박종국은 고군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된다. 박종식, 박종국은 경찰에 수배되고,
그들은 지방 유격대장으로 한국 경찰을 무수히 죽인다.
그들의 은신처 지리산 피아골이 국군에 함락 당하자 신안으로 피신하다
진도경찰서 김기일, 곽순배 형사와 총격전 끝에 마지막까지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다 사살 된다.
(1976년 2월 25일 진도군이 발행한 군지(郡誌)에 기록과 곽순배 형사의
친척 곽우불 진도 번영회 회장 증언)
8.15 행사 때, 박종식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받는다.
박지원 삼촌, 고모는 괴뢰군 앞잡이로 면민을 북괴군에 징용 시키다
9.28 수복 후 주민들에게 붙잡혀 돌과 미제 도끼자루로 맞아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진도군 무공 수훈자 회장 최기남씨 증언)
며칠 전에도 박지원은 김개정일에게 무상 쌀 50만 톤 주자고 주장하였다.
그 집안은 개정일 집단을 큰집으로 여기는 가문이다.
조선닷컴 (주) 박지원이 이러하므로, 현 대통령도 그의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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