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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5일 오전 06:40

modory 2014. 9. 15. 06:41

조선일보 2014-09-15
판결 대신 말로 튀려는… 法官 책무가 그리 가볍나 / 최연진(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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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국민도 아니고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선서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법관 윤리를 저버린 채

이렇게까지 악의적으로 다른 법관을 비난할 수 있나요."

1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김 부장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으로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정치 개입 유죄, 선거 관여 무죄'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가 글을 올린 직후인 오전 8시쯤 이 글을 봤다는 또 다른 판사는 "후배 판사들이 '우리도

이렇게 인터넷에 개인 의견을 올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봐 겁이 났다"고도 했다.

김 부장판사의 '설화(舌禍)'는 전에도 있었다. 그는 2012년 '횡성에서 2개월 미만 동안 자란 소는

횡성 한우가 아니다'는 자신의 2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있다"고 주장해 서면경고를 받았다. 이번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재판장을 겨냥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 가득한 판결을 내렸다"고

적었다. 재판장이 승진을 위해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했다고 매도한 셈이었다.

부적절한 언동을 한 현직 판사가 김 부장판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창원지법 부장판사였던 이정렬(45)씨는 2007년 서울고법에서 주심(主審)을 맡았던 사건의 합의 과정을

공개한 글을 법원 게시판에 올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 대통령을 '친미(親美) 대통령'이라 부르고,

 '가카의 빅엿'이라는 표현을 SNS에 올려 물의를 빚었던 판사도 있었다.

이 정도면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諺·법에 관한 격언)은 이미 무색해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과거 판사들은 법정에서, 판결문으로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데 앞장섰다.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에

반대하는 글을 쓴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하는 등 부당한 압력에 맞선 판사도 있었고,

경제 논리를 앞세우던 재벌 회장을 준엄히 꾸짖고 재벌 총수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를 배격한 판사도 있었다.

이들이 판사 시절 자기 공을 내세우려고 애쓴 적이 전혀 없지만, 후배 법관들은 아직도 "존경하는 선배"로

이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요즘 일부 판사들은 본업인 재판으로 명판결을 남기기보다 때로는 말장난으로, 때로는 격한 표현으로

이름을 남기려는 것 같다. 법관 책무의 엄중함을 가벼이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재산과 신체 자유에 대한 재판 업무를

계속 맡겨도 되는지 회의가 든다.

이런 돌출 행동과 언행이 영웅적인 행위로 오인하게 만든 사람이 누굴까? 한국 현대 사회에 커다란

악을 만든 인간이다.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