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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무심코 ― 장석주(1955∼ ) [조선/ 2017.01.16]

modory 2017. 3. 15. 05:52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무심코 ― 장석주(1955∼ ) [조선/ 2017.01.16]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일러스트무심코 ― 장석주(1955∼ )


늙음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선 게 숨어 있다.
살구나무가 살구나무의 일로 무성하고
살구나무가 그늘을 만드느라 바쁜 동안,
사람들은 사람의 일로 바쁘다.
옛날은 옛날의 일로 견고해지고
떠난 사람은 돌아오기가 수월치 않아 보였다
노모는 아프다.
대장에 번진 암 덩어리를 들어냈으나
회복하려면
백 년은 더 지나야 한다고 했다.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민음사, 2015)


인간이 평등하다는 건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살고 예외 없이 늙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늙음은 모든 인간의 미래다. 물끄러미, 우두커니, 무연히, 망연히 등과 이웃한 '무심코'라는 부사에는 늙음의 '홀로움'과 '고독스러움'이 배어 있다. 옛날 일로 묶여 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을 때 자주 쓰이는 부사들이다.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 시대'라니 더 많은 시간을 늙어서 살아야 한다. 한데, 늙어가면서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늙음의 낯 섦이란 어떤 걸까? '젊음의 격류와 그 젊음을 감싸던 눈부신 광휘'의 사라짐을 용인하는 일? 밀려오는 '늙음의 치욕'을 감내하는 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여전히 고민해야 하거나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잠언이 살가워진다는 거? 이 한겨울에도, 살구나무는 살살살 무성하고, 사람들은 사사사 바쁘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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