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모음♠/♧ 시 모음

[스크랩]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적경(寂境) ― 백석 (1912∼1996) [조선/ 2017.01.02]

modory 2017. 3. 15. 05:54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적경(寂境) ― 백석 (1912∼1996) [조선/ 2017.01.02]


정끝별의 시 읽기 일러스트 적경(寂境) ― 백석 (1912∼1996)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눈이 내리고 배나무에서 까치가 짖는다. 상서로운 산중의 아침이다. 나이 어린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다니 신생아의 것이자 산모의 것인 하나의 최초가 탄생했다. 모자의 것이자 산국을 끓이는 늙은 홀아비의 것인 미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태어났으니 이제 죽을 것이다. 태어나는 자의 이웃으로 죽어가면서, 죽어가는 자의 이웃으로 살 것이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지 않고 홀로 죽지 않는다. 신생아가 홀로 태어나지 않도록 누군가 낳아주고 누군가는 미역국을 끓여준다. 늙은 홀아비 가 홀로 죽어가지 않도록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 가면 오고, 갔으니 온다. 왔으니 가고, 가면 또 오는 것이다. 적막한 산골에서도 예외 없이 그려지는 사람과 시간 사이의 고요한 경계이고 풍경이다.

    한데 미역국을 끓이는 사람이 왜 늙은 홀시아버지일까? 외딴집에서'도' 산국을 끓이는 이유는?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연이 궁금하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