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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 질 대라도 깨끗이 져라<조선일보 사설>

modory 2008. 2. 21. 22:11
◇ [조선일보 사설] KBS 정 사장, 질 때라도 깨끗이 져라◇
KBS 노조가 20일 "정연주 사장은 사퇴하라"는 결의문을 냈다. 노조는 "80%가 넘는 KBS 직원이 설문조사에서 정 사장은 KBS의 미래를 헤쳐 나갈 능력이 없다고 했다"며 "KBS 구성원들 마음이 정 사장에게서 돌아섰다"고 선언했다.

KBS 노조는 작년 말부터 정 사장이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문제가 많은 경영자였는가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사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정 사장의 사장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알아서 물러날 것으로 믿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던 노조가 비상대책위를 열어 '사퇴 촉구' 결의문까지 채택한 것은 대선 후 정 사장의 행태가 심상치 않아서다.

정 사장은 작년 말 간부회의에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바위처럼 견디며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했다. 자진해선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무현정권 내내 권력의 하수인으로 권력을 편들어 오던 그가 올해 신년사에서 갑자기 "오만한 권력을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할 때부터 벌써 수상했다.

정 사장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임기를 지키겠다'는 어이없는 논리도 만들어냈다. 물론 정 사장의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정 사장은 독립성을 말하기엔 원천적 흠결을 지니고 있다"는 노조의 비웃음을 샀다. 노조는 지난 13일 "정 사장이 자신의 임기 보장을 위한 정치적 친위대로 사내 일부 우호세력을 동원하려 한다"며 "이런 어설픈 시도를 마냥 지켜보지 않겠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정 사장은 2006년 사장 자리를 연임(連任)해보려고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방법을 다 동원했던 사람이다. 노조가 KBS 사옥 정문에서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자 그 허(虛)를 찌른다고 주차장의 자동차 출구로 차를 몰고 들어가 출근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오는 차와 부딪쳐 사고를 냈더라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하여튼 대단한 사람이다.

지난주 KBS 노보(勞報)는 "KBS가 사장으로 인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미련과 아집(我執)을 버리십시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십시오. 우리의 인내는 지난 5년으로 충분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정 사장에게 '필 때야 어떤 곡절로 피었건 간에 질 때나마 깨끗이 진다'는 꽃의 예법(禮法)이나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