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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나라- <tn4106@hanmail.net> 메일

modory 2009. 5. 25. 10:45








 

이것을 바라고 당신이 자살했습니까?
당신이 자살이란 극한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자 땅에 묻히기도 전에 당신이 남긴 아무도 미워하지마라는 유언이 무색할 정도로 당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가셨나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충격입니다. 애석하고 비통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 이 세상에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나요. 그렇게 당당하던 분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요. 눈을 감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판단했습니까? 왜 살아서 훌훌 털지 못했나요.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우리 국민에게 무엇을 남기려고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나요.
 
  법을 잘 아는 분이 법이 두려웠습니까? 사법처리가 무서웠습니까? 왜 당당하게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실이 아닌 혐의는 악착스레 진실을 밝혀 정의를 구현(具顯)해야 하지 않았습니까? 진실 규명을 위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는 당신이 항상 강조해오던 원칙 아닙니까? 검찰의 수사에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검찰의 발표가 모두 허위였나요. 그러면 그럴수록 당당히 맞서야 했지 않습니까?
 
  억울했을 것입니다. 검찰의 수사는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公表)가 억울했을 것입니다. 검찰에 소환된 지 20일이 넘었지요. 참 참기 힘든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재판이 끝나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법의 정신을 어기고 마녀 사냥을 조장한 검찰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혐의가 드러날 때마다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검찰의 작태(作態)에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수모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검찰이 그럴수록 왜 당당히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워라, 구속하라, 박연차와 대질하게 하라.’고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았습니까? 그래도 미진(未盡)하면 법정 투쟁도 불사(不辭)했어야 합니다. 차라리 검찰이 구속했더라면 삶의 의지, 투쟁 의지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검찰의 비열한 망신 주기 작태를 타파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서민들이 검찰의 그런 짓거리의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변호사이고 대통령을 지낸 당신이 나서서 치유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일생을 관통(貫通)한 그 투지, 그 강인한 정신이 왜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습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 자주 찾아 갔던 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왜 투쟁의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습니까?
 
  유서(遺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자살로 신세를 갚을 수 있습니까? 자살로 앞으로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습니까? 자살로 짐을 덜어 줄 수 있습니까? 더 많은 고통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살아서 신세를 갚아야 했고, 살아서 고통을 덜어주셨어야 했습니다. 무책임했습니다. 지지자에게도, 반대편에게도, 부인과 자녀들에게도 고통과 짐을 지우고 가셨습니다. 혼자만 가벼워지려고 했습니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산에 오를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가졌으면서 건강이 안 좋다고 하면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어째야 합니까?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는 정도의 고통으로 자살을 한다면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통의 상대성(相對性)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합니다. 당신의 일생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인생이었기에, 잔디 뿌리 같은 끈질긴 인생이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이라고 유서에 남겼지요.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신을 극렬하게 욕하고 나무랐던 저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대편에 섰던 저도 미안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기에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허무(虛無)와 무상(無常)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요. 자살이 운명인가요. 아닙니다. 더 슬프게 만듭니다. 더 미안하게 만듭니다. 인생을 더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방하지 않을까요.
 
  저는 당신을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당신의 이념과, 정책과, 언동을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공인(公人)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다수를 대변했고 대변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살을 선택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됩니까? 당신의 죽음이 몇 시간도 지나기 전에 당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현 정부를, 검찰을 비난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합니다. ‘누가, 무엇이, 왜 전직 대통령을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았는지 역사와 국민이 알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정치 보복을 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죽었다고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고 당신이 자살했습니까?
 
  당신이 사랑했던 대한민국이 당신의 죽음으로 명예를 회복했습니까?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나라를 존경할 것 같습니까? 세계 언론이 당신의 죽음을 머리기사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국가 망신입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당신이 큰 잘못을 저질러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을 택했다고 단정할 것입니다. 당신을 의인(義人)으로 평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정치보복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옹호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부패 스캔들 때문에 검찰 수사의 압박을 받아 자살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하는 길도 나라를 위하는 길도 아닙니다.
 
  길이 있었습니다. 전직 대통령답게, 아버지답게, 지아비답게, 사나이답게, 인간답게 살 길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즐겨 썼던 ‘한 번 더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더라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고 죄가 있으면 죄가 있는 대로 감옥 생활을 하고, 죄가 없으면 없는 대로 떳떳이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다. 죄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참회의 단계를 거치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죄가 없으면 정치보복의 옥죄임을 깨부수어야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명복을 빌고 또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