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의도 방송가에
괴물이 득실댄다. 방송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삼켜버리는 이 괴물에겐 세 단어 이름표가 달려 있다. 조작·표절·막장이다. 가장 최근에 출현한 건
‘조작 괴물’이다. 공영 방송 KBS에 나타났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인 ‘환경스페셜’이 연출·조작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지난해
3월, KBS-1TV는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를 내보냈다. 야행성 수리부엉이의 생태를 세밀하게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방송 최초로 수리부엉이가 쥐·토끼 등을 사냥하는 장면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는 데 성공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연출·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가 “방송의 사냥 장면은 쥐와 토끼 등을 묶어놓은 채
연출돼 촬영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입수한 촬영 원본을 공개했다. 윤 교수가 확보한 30분짜리 동영상을 보면 수리부엉이를
유인하기 위해 먹잇감인 토끼를 묶어 놓은 채 촬영이 진행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이 프로그램 책임 프로듀서인 박상조 PD는 “사냥감을
줄로 묶어 놓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먹잇감으로 유인해 촬영하는 건 자연 다큐의 오랜 관행이라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박 PD는 “방송
이후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면서 세팅된 상태에서 촬영됐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정황만 공개했을 뿐 ‘연출된
장면’이란 사실을 명시하진 않았다. 또 사냥 장면을 보여주며 “수리부엉이가 토끼를 낚아채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실제
야생을 찍은 걸로 오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작진은 “세트 촬영과 인위적인 설정을 모두 공개할 경우 감동이 반감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감동이 반감되더라도 ‘연출된 장면’이란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 그 편이 신뢰를 얻기 위한 방송 본연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표절 괴물’의 횡포도 심각하다. SBS ‘스타킹’은 최근 일본 프로그램을 베꼈다가 들통이 났다. 일본 TBS의 ‘5분
출근법’의 화면 구성과 내용 등을 표절한 ‘3분 출근법’을 방송했다. 특히 연출자가 출연자에게 일본 동영상을 건넨 뒤 “똑같이 연습해 오라”고
지시한 것이 드러났다. SBS 측이 조사를 벌여 연출자를 징계했지만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시청자 비난이 속출했다.
‘막장
괴물’은 주로 드라마 쪽에 출몰한다. MBC 드라마 ‘밥줘’는 최근 부부 사이의 성폭행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 등으로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무리한 설정과 불륜·패륜으로 가득한 ‘막장’ 드라마가 우리 안방 극장을 삼켜버리고 있다.
이렇듯 ‘괴물’들이 출몰하는데 방송사들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KBS는 조작 논란에 휩싸인 ‘환경 스페셜’에 대해 “사냥 장면이 연출인데 이를 고지하지 않은 걸 확인했다”는 자료를
23일 밤 냈다. 한데 20여 분 만에 내용을 취소하는 소동이 있었다. SBS ‘스타킹’ 제작진은 “출연자가 한 일”이라며 출연자에게 표절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매일매일 시청률과 싸워야 하는 방송사의 입장은 안다. 하지만 최근 방송사들은 입만 열면 “방송의 공공성”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조작·표절·막장에 이처럼 눈감고 있으면서 공공성을 외치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