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방송

뻔뻔한 한국 지상파 방송들

modory 2009. 8. 26. 16:04

동아일보 '광화문에서' 가져 온 글 ◆일본 니혼TV와 국내 지상파 방송◆

 2009-08-26 02:55 

“현장취재, 사내보고, 연락체계, 상사의 판단 등 취재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시청자와 기후(岐阜) 현에 깊이 사죄한다.”

구보 신타로 전 니혼TV 사장은 23일 니혼TV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진상보도, 현장기자!’에 출연해 자신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오보 사건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했다. 해당 사건으로 사퇴했음에도 다시 한 번 방송에 출연해 사죄한 것이다. 조작 오보에 대해선 무한책임을 진다는 태도였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진상보도…’는 지난해 11월 한 건설사 전 임원의 제보를 바탕으로 기후 현이 공사비를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도했으나 제보가 허위였음이 드러났다. 구보 전 사장은 당시 보도국장을 경질하고 담당 PD와 데스크도 징계한 뒤 스스로 물러났다. 니혼TV는 3월 자체조사를 통해 한 차례 검증방송을 했으나 이것이 미진하다는 외부 평가를 받자 이번에 재차 방송을 내보냈다.

미국 CBS의 탐사보도프로그램인 ‘60분’의 경우에도 2004년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군 복무를 게을리했다는 문건을 보도했다가 오보로 밝혀지자 앤드루 헤이워드 사장이 직접 나서 사과했다. CBS는 문건 제보자인 예비역 중령이 문건의 출처를 속인 사실을 인정하는 인터뷰도 공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 법무장관, 전 AP 사장 등 저명한 인사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파악한 뒤 선임부사장, 책임 PD 및 부책임 PD, 오보 당사자를 해임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CBS의 간판 앵커 댄 래더도 물러났다.

일본 NHK는 2004년 PD의 제작비 착복 사건이 터지자 에비사와 가쓰지 회장이 2분간 TV에서 직접 사과방송을 했으며 결국 사임했다.

오보나 횡령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철저히 검증하고 경영진 및 제작진에게 책임을 물어 중징계해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언론사의 기본이다. 하지만 국내 방송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책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MBC ‘100분 토론’은 올 1월부터 5월까지 시청자 의견을 조작해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아예 의견을 쓰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버젓이 시청자 의견에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조작은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MBC는 인터넷 시청자 의견 담당 작가가 문장을 다듬고 여러 의견을 종합하다 저지른 실수라고 밝혔을 뿐이다. MBC는 작가를 계약해지하고 담당 부장을 징계하는 것으로 책임 문제를 마무리했다. MBC는 최근 방송문화진흥회에 ‘100분 토론’ 사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고했으나 본부장, 국장 등 지휘라인에는 아무 조치가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보도’로 지난해 사회를 혼돈 속에 빠뜨린 PD수첩의 경우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사과와 정정방송을 했을 뿐 자체 진상조사 발표나 검증 프로그램 방영은 없었다.

지난해 KBS의 현직 부사장, 본부장, 국장급 직원들이 금품수수에 연루돼 구속 또는 입건되는 등 불명예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KBS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5월 발간한 KBS 경영평가보고서는 KBS의 침묵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을 우선한다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조작 금품수수 등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도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제작자와 경영진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늘 반복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믿을 수 있는 방송을 보고 싶어 한다.

서정보 문화부 차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