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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전직 대통령 노무현씨의 회고록

modory 2009. 9. 22. 08:53

● 노무현씨 회고록 발간 ● 2009년 9월 22일

자살한 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씨가 회고록 '성공과 좌절' 출간했다고 신문마다 썼다. 그러나 인용한 부분들은 다 달랐다.

◆한겨레 신문 -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여느 정치인들의 회고록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솔한 반성과 자책, 그리고 시민주권에 대한 확신과 함께 시민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가꾸기, 시민광장, 정책연구…. 그런데 여러가지 장애가 생겼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서 물러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정착해 살기 좋은 농촌을 일구려는 꿈을 간직했던 그의 회고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거 사흘 전인 5월20일 오후에 쓴 글로, 회고록 첫장에 배치된 이 글에서 그는 검찰 수사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자책과 반성을 담았다.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죄의 글로 쓰려 한다”고 책의 성격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구상한 회고록의 성격과 목차, 대강의 구성을 통해서는 지지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우선 “나의 실패는 여러분의 실패가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 실패한 이야기가 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신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말고, 또다른 영웅의 등장을 기대하지 말고, 깨어 있는 조직된 시민의 자리에서 “노무현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으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실제 ‘왜 실패했을까’라는 목차에서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를 “절반의 성공도 못 되는 절반의 미완성”이라고 규정하고, ‘당정분리, 독선과 아집, 무리한 의제, 언론의 흔들기와 관료의 무력화, 말씨와 품위’ 등을 ‘노무현의 오류’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하지 마라’는 목차에서 “역사는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정권은 정당에 있고 권력은 시민에 있다”며 시민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리고 ‘시민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에서 “제도와 정책이 중하다. 정치, 민주주의, 그리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학습하고 조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끝내 회고록을 다 쓰지 못하고 서거했다. 때문에 이후 회고록의 구성은 그가 생전에 비공개 카페에 올린 미공개 글(1부 2장, 봉하단상), 퇴임을 앞둔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가진 네 차례의 인터뷰를 정리한 육성기록(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으로 돼 있다.

●1부 2장 봉하단상에서는 자신과 아들 건호, 형 건평씨를 향한 언론의 공격적 보도에 대한 절망(언론은 흉기다), 이명박 정부의 공과와 이후 정책에 대한 우려(작은정부와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 등이 담겨 있다.

●2부에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수장학을 ‘장물’로 규정하고, “지금도 저렇게 장물이 그냥 남아 있고, 그 주인(박근혜 전 대표)이 정권을 잡겠다고 하는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려니 무척 힘들다”며 박 전 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지역분열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국보급 대접을 받을 만한 훌륭한 지도자”라고 후하게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이전까지의 정치적 업적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못지않지만 3당 합당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선일보 - 회고록의 첫 페이지에는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인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가 수록돼 있다.

특히 제1부 1장 '미완의 회고' 내 '성공과 좌절'이라는 소제목은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의 목차를 포함해 대강의 구성을 직접 작성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됐고,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으나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16쪽),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17쪽) 등의 표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술회했다.

제1부 2장 '봉하 단상'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비공개 카페에 올린 글들이 수록됐다. 네티즌과 함께 토론하고('민주주의와 시민의 주권행사')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논하는 내용('춤추는 미사일,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담고 있다.

제2부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네 차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육성기록으로 구성됐다.

제2부 1장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어린시절부터 인권변호사, 제도권 정치인으로 이어진 인생 역정을 술회했다.

제2부 2장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는 대북관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보수·진보 양쪽의 협공을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 대한 회고를 담았다. 제2부 3장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은 노 대통령의 정치관과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 있다.

특히 2부 2장에는 노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개하는 남북정상회담의 긴박했던 분위기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물평 등 막후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 정치적 동지들에 대해 언급했다.

◆동아일보 - “시류 거역한 게 아닐까… 준비안된 개혁 무리… 쑥밭 되고말아”난 교양없어… 대통령 되려한 건 오류. 주변관리 못해 부끄러운 사람 돼
선거구 개편하고 싶어 대연정 제안. 우리쪽 사람들도 반대하자 아차 싶어
北 로켓발사 대책회의 일부러 미뤘더니 與서도
은근히 ‘안보 불감증 화살겨눠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서거 사흘 전인 5월 20일 오후 5시 5분)

21일 발간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는 회고록을 쓰게 된 배경이 이같이 소개됐다. 회고록은 200자 원고지 90장 분량으로 회고록 목차와 구성을 정리한 글을 토대로 한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제1부)와 육성기록을 측근들이 옮겨 적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제2부)으로 구성돼 있다. 회고록 분량은 284쪽. 회고록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 사죄의 글을 쓰려 한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다. (퇴임 후) 시민으로 성공해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실패는 뼈아픈 고통이며, 그것도 회복 불가능한 실패인 경우에는 죽음과 다름이 없는 고통이다.
과오는 과오로 인정해야 한다. 주변 관리는 정치인의 책임이다. 털어도 먼지안 나게 살아야 한다.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시민이 당당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사법절차의 결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정치의 전선에 다시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끄러운 시민으로 사죄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미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검찰 수사검찰에서 조사(4월 12일)를 받고 온 날 아내(권양숙 여사)가 불쑥 말한다. “권력은 돈하고 언론하고 검찰에 있어요. 정치인들은 껍데깁니다. 먹고살 것도 없는 사람들이 큰소리만 뻥뻥 쳤지, 뭐가 있어요? 돈이 있어요, 힘이 있어요?” 자꾸 불안하다.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돈 많은 사람들만 정치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도 흉기가 된다. TV 뉴스에 난데없는 활극이 나왔다. 어젯밤 기자들이 건호(장남)가 탄 차를 따라붙었다. 건호가 탄 차는 도망가고 기자들이 탄 차는 추격한다. 구도만 봐도 건호는 죄인이다. 봉하(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집은 길에서 마당이 다 보여 마당에 나갈 수가 없다. 남의 일이 아니고 내가 당해 보니 참 아프다. 산다는 것이 뭘까? 안방에서 걷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뒤로 돌아서 다시 하나, 둘…. ○ 참여정부의 공과절반의 성공도 하지 못했다. 시작한 것도 거의 미완성이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도 못되는 절반의 미완성이다. 비판들을 모아보자. 정치력-당정분리, 독선과 아집, 지지 세력에 대한 배반-이라크 파병, 대연정, 한미 자유무역말씨와 품위, 언론과의 싸움,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 대통령….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류를 거역한 것이 아닐까. 국민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일을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준비된 조직적 세력도 없이 정권을 잡았고 우리 사회가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개혁을 하려고 한 것이 무리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이 오류였던 것 같다. 대통령은 위험한 직업이다. 쑥밭이 되고 말았다. 정치를 안 했으면 꽤 괜찮은 지식인으로 살았을 것 같다.

○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

나는 교양이 없다.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하고, 기품 있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다. 아내가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잘 안된다. 끝까지 못 고치는 걸 보면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것 아닌가 싶다.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것은 조금 가혹하고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다.

○ 구시대의 막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후보 시절에는 특권, 부정부패, 유착 등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봤다. 적어도 참여정부의 과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선자금 문제가 터졌다. 새집에 들어와서 새 살림을 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새집에 쓰레기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쓰레기 대청소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저도, 상대방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통령으로서 정통성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다시 수준을 낮춰 ‘구시대의 막내’ ‘마지막 청소부’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제가 할 몫을 생각하게 됐다. ○ 대연정 제안과 열린우리당 여소야대 상황에서 실권을 가진 총리와 내각을 야당에 주고 그 대신 선거구 개편을 받으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탄핵사태로 2004년 총선에서 이겼다. 그런데도 대연정을 제안하자 우리 쪽 사람들은 ‘당신 혼자 잡은 정권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돌아서버렸다. 나도 ‘아차’ 싶었다. 정권을 바라보는 나와 지지자들의 인식 차를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오류이다. 열린우리당은 창당하지 않을 수 없는 정당이었다. 지역정당을 벗어나서 전국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적 당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안보 불감증’

북한의 로켓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차적으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나서서 북한과 각을 세워서 남북관계에 긴장을 조성할 일도 아니고, 판을 키워서 북한의 의도에 맞장구를 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로켓 발사 당일 새벽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지만 아침 대책회의도 일부러 (오전) 11시로 미뤘다. ‘안보 불감증’이라는 언론의 비난쯤은 감당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여당 사람들도 은근히 화살을 겨누더니 나중에는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안보 부서 사람들이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대통령이 안보라인 사람들에게 미안하게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중앙일보-“대통령 하지 마라, 위험한 직업이다”

●“김정일, 말이 좀 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 느껴”=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의 비화와 뒷얘기도 소개했다. 그는 “정상회담 첫날은 김정일 아닌 김영남 위원장을 만났다. 남측에 으레 하는 비판을 45분간 장황하게 얘기해 참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 김정일 위원장도 똑같이 (이 얘기를) 반복하면 회담에 무슨 성과가 있겠나’라고 한 다음 자리를 마감했다. 이튿날 만난 김정일 위원장이 ‘먼저 얘기를 하라’고 해서 미리 준비한 30분짜리 기조발언 자료를 설명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7·4 공동성명부터 여러 선언들이 지금 보면 종잇장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남측이 제안한) 특구라는 것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고, 실질적으로 이득 본 것이 없다. 개성공단이나 잘해 마무리하고 생각해보자’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북측이 개혁·개방이란 말에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후에 가보니 의외로 안 된다던 것도 ‘다 좋다’고 해 풀렸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기습적으로 체류연장 제의를 받은 것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김 위원장이 ‘그거 결정 못합니까’라고 해서, 평소 버릇대로 ‘큰 건 내가 결정해도 작은 건 내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의 인상도 소개했다. 그는 “듣던 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국정 전반을 아주 소상하게 꿰고 있어 놀랐다. 우리가 개혁이니 개방이니 말하면, 자신의 소신과 논리를 아주 분명히 체계적으로 표현했다. 실무적인 문제에선 상당히 융통성이 있고, 말이 좀 통할 수 있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북쪽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이 김 위원장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단히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동거정부·연정은 무리한 욕심 부린 것”=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건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라며 “시민으로 성공해 만회하고 싶었으나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거정부를 생각한 거나 연정, 지역구도를 극복하려고 한 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리한 욕심을 부린 것”이라며 “대통령 하지 마라. 너무 많은 금기들(연극관람·골프)이 있고 위험한 직업이며 돈·언론 등 권력수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또 “정치인과 언론 모두 개헌하라고 주장하다 막상 개헌 이야기를 2007년 초에 끄집어내니까 전부들 논의를 중단하자며 덮어버렸다. 대선 블랙홀이다”라고 비난했다.

●“이해찬·한명숙·유시민은 훌륭한 재목”=노 전 대통령은 “이해찬·한명숙·유시민 세 분 다 훌륭한 재목”이라며 “이들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것에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바람을 잘 일으키는 정치인이 꼭 바람직한 정치인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말을 더듬더듬 해도 행적을 봐서 신뢰할 수 있으면 좋은 지도자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김대중은 국보급 대접을 받을 만한 지도자이며 김영삼 역시 1987년 이전까지 정치적 업적은 김대중에 못지않다. 그런데 1990년 3당 합당으로 영원히 민주세력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김영삼이라 20년 동안 그가 만든 구도와 싸우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동아일보의 기사 첫 머리 글인 "시류 거역한 게 아닐까… 준비안 된 개혁 무리… 쑥밭 되고말아” 난 교양없어… 대통령 되려한 건 오류. 주변관리 못해 부끄러운 사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