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개발에 따른 관련 자료와 기사 ◈ 대구의 하천은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중심부 용두산 - 수도산 - 동산 - 달성공원 앞 - 금호강으로 흘렀는데 홍수때마다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정조 즉위년(1776) 이서가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여 주민들의 피해를 염려, 정조 2년(1778) 주민 부담없이 사재를 털어 물길을 돌려 제방을 축조하고 새로 만든 내를 새내 또는 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주민들이 제방이름을 이공제라 칭하고, 그해 8월에 이 비를 세웠다. 이 비가 이공제비이고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이다. 건립이후 없어진 것을 정조 21년(1797) 다시 세우고 순조 8년(1808) 그 공덕을 기리기위해 또 다른 비를 세워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다가 지금의 자리 대구 수성구 상동 182에 자리를 잡았다. 이 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물길까지 돌려놓았지만 데모가 심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반대의 상소도 없었고 신부들처럼 선동도 없었다. 허긴 그때야 천주교가 없었지만... 진보적 기독교계 원로인 박 이사장은 세계교회협의회(W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간사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1970년대엔 반(反)유신운동을 펼쳤고,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10년간 지내며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다. 참여연대는 최근 유엔 안보리에 정부의 천안함 폭침 사건 조사결과를 부인하는 서한을 발송, 논란을 일으켰었다. 박 이사장은 일부 종교계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4대강 반대운동과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도 비판했다. "4대강 문제는 대(對)정권투쟁같이 보인다. 교회가 정당정치에 휘말려 들어가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 이사장은 "(지금의)대(對)정부 저항은 유신시대 저항과는 다르다. 덮어놓고 정부 반대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종교계의 현실 참여는) 정권 타도가 목적이 아니잖으냐"고 했다. (2010년 8월 9일 조선일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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