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방송

한 중 일 드라마 작가들의 이야기

modory 2010. 9. 10. 08:18

韓·中·日 스타 작가 3명 '방송작가 콘퍼런스'서 만났다●

조선일보 2010-09-10일자 "韓·中·日 스타 작가 3명 '아시아 방송작가 콘퍼런스'서 만났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소현경… "허구지만 개연성 있어야 좋은 드라마" 일본 오자키 마사야… "'결혼 못하는 남자'는 나 자신이 모델" 중국 왕리핑… "희망 주는 이야기 쓰는 게 내 철학"이란 기사를 썼다.

"저는 이제 한국 사람들과 일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동아시아 국가 간 영상 콘텐츠시장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어요."(오자키 마사야), "동아시아 작가들끼리는 감성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서로 비슷한 생각을 확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소현경)

한국·중국·일본의 스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일까지 서울 임페리얼 팰리스호텔에서 진행되는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주최 '아시아 방송작가 콘퍼런스'를 통해서다. 5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찬란한 유산'을 비롯해 '검사 프린세스' '그 여자' 등을 쓴 소현경,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결혼 못하는 남자'를 쓰고 한·일 합작 드라마 프로젝트 '텔레시네마'에 참여했던 오자키 마사야, '며느리의 아름다운 시절'로 상하이 국제영화제 최고 작가상을 받은 왕리핑이 9일 서로의 영상 철학을 나눴다.

한·중·일 인기 드라마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9일 오후‘아시아 방송작가 콘퍼런스’참여차 방한한 오자키 마사야, 소현경, 왕리핑(왼쪽부터) 작가가 유쾌한 분위기속에 대담을 갖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왕 작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두 작가 드라마의 열혈 팬이었다"며 "한국과 일본에서 드라마 작가의 위상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소 작가는 "한국의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는 작가가 주도권을 잡을 때가 많다"며 "두 시간짜리 영화와 달리 몇 달에 걸쳐 방송되는 드라마는 서사 구조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오자키 작가도 "영화는 큰 화면을 통해 관객들의 시선을 영상에 집중시키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다른 일을 하면서 감상하기 때문에 영상보다 대사가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며 "그래서 일본에서도 작가의 영향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왕 작가가 대꾸했다. "요즘 중국 방송가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한답니다. '일류 연예인, 이류 감독, 삼류 작가로는 드라마가 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류 작가, 이류 연예인, 삼류 감독으로 팀이 꾸려지면 대체로 성공한다.' 하하하."(왕)

좋은 드라마는 무엇인가?

좋은 드라마의 기준에 관해 묻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소 작가는 "'찬란한 유산'이 착한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그런 의도를 갖고 쓴 작품은 아니었다"며 "드라마의 기본은 개연성"이라고 했다. "드라마는 분명 허구의 세계를 다루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줘야 시청자가 감동을 받습니다. 일부 드라마가 '막장'이란 비난을 받는 건 근본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대담 내내 명랑하게 웃던 왕 작가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며 "그게 제 드라마 철학의 전부"라고 했다. 오자키 작가는 "TV 드라마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게 중요하다"며 "시청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바람직하다"며 "'결혼 못하는 남자'는 나 자신을 모델로 삼아 썼는데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한류는 죽지 않는다

이들은 각국 드라마의 특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소 작가는 "일본 드라마는 미스터리, 수사, 첩보, 모험 등 소재가 다양해서 배울 점이 많다"며 "중국 드라마는 순정(純情)적 느낌이 강해서 선정성 경쟁에 몰두하는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왕 작가는 "그래도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따뜻하고 유머가 넘친다"며 "일본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지만 가끔 잔혹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고 했다. 오자키 작가는 "한국 드라마는 감정을 직선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중독성이 높다"며 "그래서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류(韓流)의 미래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이제 한국 드라마는 일본에서 일상이 될 겁니다. 한류라는 별칭으로 따로 불리는 붐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말이죠."(오자키) "한국 드라마는 순수하고 깔끔해서 계속 아시아의 핵심 콘텐츠로 대접받을 겁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빼어난 외모도 큰 힘이에요. 처음 한국 드라마를 접했을 때는 연기자들이 실재(實在)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