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하며
먼 곳을 돌아 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조병화(趙炳華)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푸르른 날>
가을을 파는
꽃집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가을 수채화
속으로
윤준경 우리
소풍을 떠나요 가을 수채화 속으로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어디서 찌빠귀새 사랑을 노래하는
페달을
밟으세요 허리를 꼭 잡을께요 우리의 머리칼은 길게 날려 하늘에 닿을 꺼예요
숲길을 돌아 여기쯤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 손을 잡고 걷기로 해요
나뭇잎은 꽃잎처럼 떨어져 가을을 덮고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가을 수채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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