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방송

[스크랩] 공영방송 KBS의 문제 -동아일보 2014-05-29

modory 2014. 5. 29. 08:37

불륜-막말 판치는 ‘空營방송’… 심의제재 건수 상업방송 능가

재난의 KBS 대수술이 필요하다
올들어 20건 제재… 지상파중 1위, 사장은 막장드라마에 “훈훈” 칭찬
시청률 연연 철학없는 제작… 가이드라인 만들고도 제대로 안지켜

선정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된 KBS 오락 프로그램들. 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2월 24일 방송에서 남성 출연자가 뚱뚱한 여성 진행자에게 “개 사료 드세요?”라고 묻는 장면을 내보냈다. 당시 카메라에 잡힌 방청객들도 놀라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KBS는 자막까지 넣어 방영했다(위쪽 사진). 2월 종영한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옛 사위의 여자친구에게 찾아가 폭력을 휘두르는 장모가 나왔다. KBS 화면 촬영

가족마저 돈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어머니, 성실한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바로 옛 애인과 불륜에 빠지는 아내, 바람난 남편을 잡으려고 납치 자작극까지 벌이는 여자….

조간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엽기적인 사건 기사가 아니다. KBS가 온 가족이 시청하는 주말 저녁 시간대에 편성한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올 2월 막을 내릴 때까지 시종일관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길환영 KBS 사장은 드라마 종방연에 참석해 “할머니, 아버지, 자식 삼대를 아우르는 훈훈한 이야기로 수신료의 가치를 전하는 대표적 KBS 드라마”라고 칭찬했다. 한국 공영방송의 초라한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씁쓸한 에피소드다.


○ KBS 올해 심의 제재 건수 1위

KBS는 보도 기능만 상실한 것이 아니다. 상업 채널과 구분이 안 되는 막장 오락물은 더 큰 문제다. 시청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교양 수준을 높이는 공영방송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올 4월 KBS(KBS1, KBS2)가 문제 있는 방송을 내보내 받은 제재 건수는 59건으로 MBC(56건)나 SBS(57건)보다 많다. 올해 통계만 봐도 KBS가 받은 제재 건수는 20건으로 지상파 중 1위다. 지상파 방송의 연예 오락 분야 제재건수만 따지면 전체 24건 가운데 11건이 KBS가 받은 제재다.

KBS 드라마는 ‘무법지대’다. 지난해 10월 방영된 월화드라마 ‘미래의 선택’에서 해고된 여주인공이 방송작가가 될 기회를 얻자 남자 직원들은 “근데 어떻게 꼬신 거야. 혹시 뭐 김신(간판 아나운서)이랑 잤어?”라고 성희롱했다. 같은 해 6월 일일드라마 ‘지성이면 감천’에선 타인의 동의 없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검사를 의뢰하는 불법행위가 등장했다.

예능도 다른 상업 방송과 차이가 없다. 올 3월 방영된 ‘맘마미아’에선 20세 남자 아이돌 가수가 어머니를 ‘○○이’, ‘○○아’라고 이름으로 부르며 반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남자 출연자가 뚱뚱한 여성 진행자에게 “개 사료 드세요”라고 묻거나(토크쇼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2월 24일 방영분), 남자 배우가 개인기를 보여준다며 성행위할 때 여성이 내는 신음소리를 비트박스로 흉내 내는 모습(‘우리동네 예체능’ 지난해 4월 23일)이 여과 없이 방송되기도 했다. KBS는 최근 편성표를 무시하고 일요 예능 시작시간을 오후 4시 50분대에서 4시 20분대로 기습적으로 바꿔 일요예능 시간 앞당기기 경쟁도 주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예능 프로를 내보내 시청자를 잡겠다는 꼼수다. SBS 관계자는 “MBC와 SBS에서 방송 시간 가이드라인을 정하자고 했지만 KBS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KBS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 예능과 드라마 제작 철학이 없다



KBS의 막장 드라마, 끝장 예능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4월 방영된 드라마 ‘장화홍련’에서는 며느리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감금하는 장면이 나와 사회적 논란이 됐다. 같은 해 ‘미녀들의 수다’는 “키가 작은 남성은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여성 출연자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KBS는 ‘루저 발언’ 사태 후 ‘방송의 소재 및 표현에 관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반사회적 가치를 조장하는 표현이나 특정 집단과 개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방송할 수 없다. 특정 신체 부위를 세밀히 묘사해도, 미신 소문 비과학적인 사실과 욕설이나 과도한 사적 이야기를 내보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KBS 관계자는 “시청률만 높게 나오면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는 따지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회사원 박재석 씨(39)는 “선정성, 막장 논란이 터지면 매번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공영방송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 달 방송되는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는 방영 전부터 “또 막장 드라마인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KBS는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여자의 대리모가 돼 복수를 꿈꾸는 여인과 아이를 지키려고 분투하는 여자의 갈등을 그린 처절한 복수극’으로 홍보하고 있다. 드라마 포스터에는 아기를 안은 배우 장서희와 그의 목을 섬뜩한 표정으로 만지는 이채영의 사진까지 실렸다. 
 


▼ NHK-BBC에선 막장 드라마 꿈도 못꿔 ▼

외국의 공영방송은
드라마-오락프로도 품격 지향… 상업방송과 철저히 차별화
KBS, 제작비용 절감 노력 없이… “수신료 비중 낮다” 타령만

NHK 일일 드라마 ‘하나코와 앤’. NHK 화면 캡처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은 어떨까. 선진국의 공영방송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KBS와 같은 막장 드라마나 선정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외국의 경우 공영방송은 보도와 시사뿐만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방송사 조직원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NHK의 경우 드라마도 ‘착하게’ 만든다. 현재 방영 중인 일일드라마 ‘하나코와 앤’은 캐나다 작가 루시 몽고메리가 쓴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처음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한 여류 번역가 무라오카 하나코(村岡花子)의 일대기를 다뤘다. 9월 방송되는 일일드라마도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공영방송’ KBS의 일일드라마는 어떨까. 현재 방영 중인 ‘천상 여자’는 ‘수녀의 복수극’이라는 엽기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재벌가 사위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버린 남자, 살해당한 언니의 복수를 하려는 수녀 동생, 망나니 재벌 3세의 집안 갈등 등 막장 요소들이 버무려진다.

안창현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원은 “NHK는 예능도 정보와 오락이 결합된 인포테인먼트 형식이나 ‘가요무대’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며 “상업방송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영국 BBC도 마찬가지다. 현재 방영 중인 일일드라마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는 런던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1985년 시작된 영국의 ‘국민 드라마’다. 시간여행을 다룬 ‘닥터 후’, 귀족사회를 그린 ‘다운턴 애비’, 셜록 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셜록’처럼 BBC 드라마는 세계 시장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셜록’ 시리즈는 180개 국가에 판매돼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오락도 사회적 의미를 중시한다. BBC가 지난해 만든 리얼리티 프로그램 ‘익스트림 OCD캠프(Extreme OCD Camp)’는 강박증 환자가 치유되는 모습을, ‘SAS’는 일반인이 특수부대 훈련을 견뎌내는 과정을 다뤘다. BBC는 올 2월 퀴즈쇼 ‘모크 더 위크(Mock the Week)’가 여성 출연자를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자 남자만 나오는 오락 프로의 방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KBS는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재원 구조 탓을 한다. 재원의 70% 이상을 수신료로 충당하는 BBC NHK와, 수신료 비중이 38%에 그쳐 광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KBS를 단순 비교할 순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KBS 재원 구조로도 공영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정준희 강의전담 교수는 “NHK는 자사 출연 연예인의 출연료를 민영 방송사의 5분의 1만 주는 방법으로 예산을 아낀다”며 “KBS도 스타 위주의 캐스팅을 줄이고 창의적인 오락 프로 포맷을 개발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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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방비워(방송비평워크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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