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홍찬식 칼럼]민주통합당 발목 잡는 ‘방송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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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13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대해 워낙 피해의식이 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이 말은 요즘 여야의 대치 정국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잘 설명해준다.
민주통합당은 새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명분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무를
지금처럼 방 송통신위원회에 두지 않고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게 되면
방송의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주장이다.
일반인들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수 있는 이 말을 박 원내대표는
‘언론 장악’이라는 단어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일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새 정부의 ‘방송 장악’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고, 몹시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지상파 방송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민주당의 우려와
피해의식이 과연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해 2012년 10월 17일부터 12월 5일까지 50일 동안
KBS MBC SBS YTN의 메인 뉴스를 대상으로 대선과 관련된 보도를 조사했다.
이 기간에 대선 관련 보도는 모두 601건이었다. 한 방송사가 하루 평균 3회 정도
다룬 셈이다. 2007년 대선 때와 비교하면 분량 면에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뉴스의 유형에서는 ‘사실 전달’이 전체의 66.4%, ‘갈등 공방’이 24.1%로
모두 합쳐 90%를 넘었다. 단순한 사실을 보도하거나 여야 양쪽의 의견을 함께
다룬 뉴스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다.
지상파 방송들이 대선 뉴스를 적게 다룬 것을 나무랄 수는 있어도 여당의
‘방송 장악’을 하소연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송에 대한 민주당의 피해의식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오랜 야당으로서 참으로 힘든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집권한 이후 특히 노무현 정부 때에는 오히려 어느 정권보다도
‘방송 장악’ ‘언론 통제’에 적극적이었다.
노 정부 초기인 2003년 3월 지명관 KBS 이사장은 “KBS 사장 임명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으로 KBS 사장에 임명됐던 서동구 씨는
이 일로 9일 만에 물러났다. 당시 청와대는 “전혀 개입한 적이 없다”고
우겼으나 노 대통령은 나중에 “서 사장을 KBS 이사회에 추천했다”며 인사
개입을 시인했다.
‘방송 장악’에 이은 ‘코드 방송’ 논란은 노 정권 내내 이어졌다.
노 정권의 ‘언론사 괴롭히기’ 소송과 기자실 폐쇄 조치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자유로울 수 없다. 보도를 문제 삼아 무더기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냈다. 민주당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더 열심이었다.
노 정권 말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이 시행되고 이에 따라
정부 부처의 기자실이 폐쇄되자 기자들은 건물 로비에 앉아 기사를 송고해야 했다.
노 정권은 가혹하게도 기사 송고를 위해 필요한 전원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 주역들이 다시 ‘방송 장악’을 염려하는 모습은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민주당의 피해의식은 이후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다시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마음대로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수많은
정보들을 빛의 속도로 전달하고 있다.
SNS 이용자 가운데 70∼80%는 민주당 성향의 진보 쪽으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방송이 진실과 다른 뉴스를 내보내다가는 곧바로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돌이켜 보면 민주당이 집권했던 10년 동안 주요 방송들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편파적인 방송’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다.
보수 단체들은 방송 내용에 불만을 품고 ‘공영방송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
민주당의 피해의식은 그 시절 아련한 추억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때의 방송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 요즘 방송들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이 진정 방송의 공정성 독립성을 원한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방송에 대한 과민 반응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자신들이 반대했던
종합편성채널에 출연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번 정부조직 개편 문제를
놓고 MBC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바꾸려 한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스로 방송의 독립성을 외치면서 공영방송 사장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결국 민주당도 지상파 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했다.
‘방송 장악’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이나 집착은 민주당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민주당은 주요 방송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시절에도
정권을 내줬다. 이제 ‘방송 장악’의 의미는 크게 퇴색했다.
민주당의 ‘방송 장악’ 주장에서도 아직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방송 장악’에 더 매달리기보다는 민주당의 달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정치가 중요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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